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들로 '대세 배우' 등극

배우의 연기를 보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결국 이기적인, 본능적인 것에 가깝다. 상황을 보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 예를 들면 행동이 과장되거나 생각이 짧은 사람을 보고 ‘내가 저 사람보다 낫구나’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안도감이다. 또는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결국 시련과 위험을 거쳐 안전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안도감, 이런 생존 자체에서 오는 본능적인 마음이 재미의 핵심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는 보는 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사건도 풀어주면서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많이 있어왔다. 굳이 말하자면 ‘2% 부족한’ 인물들? 지금 드라마에서 배우 전석호만큼 이러한 스타일의 배역을 잘 소화하는 연기자는 찾기 어렵다.
현재 방송 중인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전석호의 그러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드라마에서 연기를 지망했던 인물로, 신이랑(유연석)이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인 윤봉수 역을 연기한다. 시도 때도 없이 귀신이 들고 나는 신이랑의 상태를 가장 먼저 의심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나서는 신이랑 특유의 잠입해결에서 연기력을 발휘해 사건을 풀거나 꼬는 인물이다.

윤봉수에게는 운이 없거나 어이없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진다. 2회 빌런 조기철의 아지트에서 컴퓨터를 찾다 함께 잡히고, 3회에서는 서서히 이랑을 돕지만 뭔가 어설프다. 4회 경찰로 위장하는 장면에서는 용의자에게 하는 ‘미란다 원칙’을 거꾸로 말하기도 한다. 그가 등장하면 이상한 사건이 더욱 꼬이고, 시청자들은 뭔가 재미를 기대한다.
그러한 분위기에는 전석호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한다. 어두운 톤 얼굴에 뭔가 억울한 듯한 눈매 그리고 얼굴을 가득 채운 짙은 눈썹은 마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짱구’가 성장해 실사 드라마에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020년대 중반 이후 전석호의 이미지는 다 이렇게 뭔가 ‘2%’ 부족한 인물들이 많았다.
‘무빙’의 깐죽대던 요원 출신 선생님 윤석욱을 비롯해, 유전자 개발자지만 위기에 처해 혼비백산하는 ‘지배종’의 서희, ‘MZ 호소인’으로 활약한 ‘엄마친구아들’의 윤명우, 인간적이지만 뭔가 철이 없는 ‘라이딩 인생‘의 홍재만 등 캐릭터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나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소환될 수 있는데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달아 공개됐던 넷플릭스의 시리즈 ‘오정이 게임’의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에도 활약했다. 시즌 2 초반 ‘딱지남’ 공유로부터 형님 김정래가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황준호(위하준)를 조력한다. 그는 극의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조연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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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배로 보이지만 의리를 중시하고, 복수에 가슴이 불타지만 그 과정이 어설픈 것은 마치 ‘신이랑 법률사무소’의 캐릭터 시초를 보는 듯하다. 전석호는 오랜기간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력에 상황을 자세히 보는 재치 그리고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엉뚱함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쌓고 있다.
전석호가 등장 처음부터 지금의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처음 이름을 알린 tvN ‘미생’에서 얄미운 이미지의 하대리로 등장했다. 이후 ‘힘쎈여자 도봉순’의 공 비서, 2018년 ‘라이프 온 마스’의 지질한 악당 한충호, ‘킹덤’ 시리즈의 조범팔까지 그의 초반 역할은 비호감이 많았다. 지질하고 밉상이던 배역의 이미지는 점차 지질하지만 밉지 않은 쪽으로 변하더니 이젠 어수룩하지만, 정감이 가는 톤으로 ‘워싱’되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유연석 등과 함께 출연한 SBS 예능 ‘틈만 나면,’에서도 과거 MBC ‘무한도전’의 드라마 ‘위기의 회사원’에서 함께 한 유재석의 얼굴을 금세 못 알아보는 등 허당미를 과시했다. 실제 그를 여러 공식석상에 보면 특유의 너스레로 분위기를 좋게 이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 연출자 역시 사람이고 배우의 성향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결국 그의 원래 성격이 지금 전석호의 배역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는 데뷔는 2000년 영화 ‘하면 된다’로 일찍 했지만, 앞서 기술한 ‘미생’의 인기가 있기 전까지는 무명 즉 ‘미생’의 기간을 거쳤다. 주로 해외원작의 작품들로 기반을 다진 그는 얼굴을 알린 이후에도 ‘트루 웨스트’ ‘터키 블루스’ ‘클럽 베를린’ 등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어수룩한 역할에서 보이는 그의 기민함은 다 이런 경험에서 비롯됐다.
스스로를 2% 부족하게 치장하는 전석호의 장기는 오히려 보는 사람에게 만족도 ‘200%’를 보장하는 옵션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를 찾는 손길은 더욱 늘어났고, 13일부터 공개되는 티빙 ‘유미의 세포들 3’에서도 안대용 역할로 다시 등장한다. 여기에 이용재 감독의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 연극 ‘클럽 라틴’까지 그의 올해는 바쁠 예정이다.
자신을 구기고 낮추면서 오히려 재미를 배가하는 ‘어수룩한’ 캐릭터의 모범 사례. 그가 있기에 관객과 시청자는 긴장을 내려놓고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남의 마음 빗장을 해제하는 연기는 가장 고단수의 접근이라 봐야 한다. 2%를 채우지 않고 200% 만족을 주는 전석호의 연기는 2026년 4월, 더욱 알차게 영글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