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로만 치부하기엔 우리네 현실서 실감하게 되는 사회적 계층

장안의 화제인 MBC 금토극 ‘21세기 대군부인’(극본 유지원, 연출 박준화)은 입헌군주제라는 낯익은 상상 위에 세워진 계약결혼 로맨스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훨씬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야망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가.’ 답이 자명해 보이지만, 실상은 결코 단순치 않은 이 질문이 드라마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앞단에서는 계약결혼을 향한 좌충우돌 소동극을 펼치고 있지만, 화려한 설정과 복잡하게 설계된 관계 뒤편에서 야망이 억눌리고 제한된 삶을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먼저 여주인공인 캐슬뷰티 대표 성희주(아이유)가 후처 소생이라는 이유로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캐슬그룹 후계구도에서 배제되는 상황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게다가 왕실과 양반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성희주는 평민 출신 재벌가 서출이라는 이중의 한계 속에 놓여있다. 맞선 상대도 그 ‘격’으로 정해지는 상황에 격분한 성희주는 학교 선배였던 이안대군(변우석)을 직접 찾아가 계약결혼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전국민적 사랑을 받는 이안대군은 모든 조건을 갖춘 완벽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남이라는 이유 하나로 왕위에서 배제된 그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감히 넘볼 수 없는 한계’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슬픔이 있다. 그렇다고 야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3회에 성희주가 자신과 결혼하려는 이유를 묻자 “내가 왕위에 오르고 싶다고 할 때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라고 답하며 숨겨뒀던 야심을 드러냈다.
결국 두 사람은 왕실과 재벌이라는 조금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지만, 출생이 야망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좌표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성희주의 청혼은 로맨틱한 제스처라기보다 규정된 사회를 향한 도발이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설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런 성희주는 이안대군에게 일종의 해방으로 작동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성희주의 직진으로 이안대군의 억눌린 욕망이 비로소 언어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라는 오래된 명제를 슬쩍 호출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문장이 곧이곧대로 믿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사는 실제를 돌아보게 하고 되묻게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씨가 따로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입헌군주제 설정의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강력한 왕실과 양반 계층이 현존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을 그리며 눈길을 끌고 있다. 왕족들과 양반들의 행태가 고고하다 못해 조선시대를 방불케 하는 모양새고, 그런 그들을 향해 평민들은 환호하는 모습이라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이내 불편함과 씁쓸함이 따라온다. 신분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삶의 층위가 분명하게 나뉘는 실제 우리의 현실세계를 반추하게 만들며 여러모로 생각에 골몰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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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존재감은 이 같은 드라마의 이야기나 캐릭터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아이유는 야심만만하고 자존심 강한 성희주를 경쾌하면서도 노련하게 표현한다. 그의 전작인 ‘호텔 델루나’(2019) 때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익숙한 이미지의 반복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성희주의 무서운 추진력을 아이유가 흡인력 있게 구현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이자 배우로서 전천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이유가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거듭 경신하고 있는 흐름을 고려하면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은 더 높아진다.
아직 펼쳐보일 게 더 많은 변우석은 억눌린 이안대군을 성공적으로 그리고 있다. 훤칠한 피지컬과 해사한 마스크는 기품을 뽐내는 수트까지 어우러져 ‘대군의 빛’을 환하게 뿜어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될 수 없는 자리’에서 ‘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이안대군의 심정이 ‘선재 업고 튀어’(2024)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변우석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중이다. 이번 드라마로 믿고 보는 로맨스 남주의 입지를 다지려는 결연함이 변우석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아이유와 변우석이 인기로든 연기력으로든 정점에 올라보겠다는 갈망으로 애쓰는 모습이 극중 캐릭터들의 야망과 포개지며 놀라운 설득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인 이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변우석이 있다. 주연배우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 변우석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큰 별이 될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다. 이안대군의 서사가 그러할 것으로 예상되듯 변우석 또한 더 큰 배우가 되려는 야망을 품었을 거란 팬들의 마음이 모이고 있다.
변우석과 아이유의 야심찬 행보에 기대를 걸고, 또 걸며 ‘21세기 대군부인’의 다음회를 기다리게 된다.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