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4집 '개화'로 음원 차트 1·2위 장기 집권
상처 다독이는 악뮤표 위안과 위로의 음악
음악 그 자체가 따뜻한 처방전이 된 남매듀오

자극과 자본이 가요계를 주도하는 시대다. 업계에선 음악 외적인 기믹이나 대형 기획사의 천문학적인 물량 공세 없이는 차트 정상에 서기 어렵다는 탄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견고한 공식을 비웃듯, 오직 음악과 서사만으로 정상을 꿰찬 이들이 있다. 지난 7일 정규 4집 '개화'를 발매한 남매듀오 악뮤(AKMU, 악동뮤지션)다.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발매 이튿날 멜론 일간차트 1위에 올랐고, 1번 트랙 '소문의 낙원' 역시 5위로 진입해 바로 다음 날 2위로 올라섰다. 3주째 차트 1, 2위를 수성 중인 이 두 곡은 최근 자리를 맞바꿨을 뿐 여전히 적수 없는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값에만 기댄 채 만듦새가 부족하면 가차 없이 외면받는 가요계에서 악뮤는 스스로 한계를 깨고 또 한 번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
지금의 차트 상황은 새삼 악뮤라는 이름의 묵직한 무게감을 실감케 한다. 이번 앨범은 이들이 2014년 데뷔 때부터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독립한 '영감의 샘터'에서 선보인 첫 결과물이다. 대형 기획사의 든든한 울타리나 대대적인 프로모션 없이 거둔 이 성과는, 악뮤라는 이름 자체가 대중에게 기꺼이 귀를 맡기게 하는 신뢰의 이름이 됐음을 보여준다. 정규 1집 'PLAY'(플레이)와 2집 '사춘기', 3집 '항해'를 거치며 켜켜이 쌓아온 성장 서사는 자본이 아닌 음악성에 빚진 4집 '개화'를 통해 비로소 완전한 결실을 맺었다.
공감의 문을 닫은 자기과시나 파괴적인 세계관 대신 악뮤가 앨범의 중심에 채워 넣은 것은 '진짜 이야기'다. 앨범의 이면에는 남매의 애틋한 서사가 짙게 배어 있다. 이찬혁은 마음의 병으로 오랜 시간 방 밖을 나오지 못하던 동생 이수현의 회복을 돕기 위해 기꺼이 동거를 자처했고, 그 시간에서 길어 올린 감정을 이번 앨범 곳곳에 담아냈다.

"걸어 잠근 창문 속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라고 묻는 수록곡 '햇빛 bless you'의 가사는 방황하는 동생을 향한 오빠의 다정한 부름이다. "좀 냄새나도 좋고 따분해도 좋으니,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문을 열라"는,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는 작위적인 기획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묵직한 울림을 안긴다. '유퀴즈'에 출연한 이찬혁이 "말의 힘을 믿기에 수현이가 이 노래를 부르며 가사처럼 되기를 바랐다"고 밝힌 것처럼, 개인의 뼈아픈 치유 과정은 결국 대중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보편적인 위안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진정성이 얹힌 '개화'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잘 짜인 단편 소설집처럼 유기적인 흐름을 지닌다. 트랙 배치의 묘미가 돋보인다. "잠깐 앉아요 따뜻한 수프와 고기가 있어요"라며 지친 나그네를 맞이하는 '소문의 낙원'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타이틀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라는 가사는 삶의 명암을 온전히 긍정하는 성숙한 시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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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평범한 소재에서 철학적 사유를 끌어내는 이찬혁의 기발한 장인 정신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마지막 트랙 '얼룩'에 이르러 "너의 얼룩진 상처 내 안에 늘 기억할게 / 이젠 보내야 해"라며 낡은 굴레를 훌훌 벗어던지는 과정은, 앨범명 그대로 속박에서 벗어난 진정한 '개화'의 전율을 선사한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삶의 메시지들은 이찬혁의 담백하면서 깨끗한 선율과 이수현의 천부적인 음색을 타고 대중에게 편안하게 스며든다. 이것이 바로 '악뮤표 이지리스닝'이 가진 타격감이다.
과거 'K팝스타' 시절부터 이찬혁은 주류 팝 문법 안에 머물면서도 그것을 비틀고 재해석하는 창작자였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쉬운 언어를 택하되, 그 안에 감정의 작동 방식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심어두는 방식이다. 그는 정서적 과잉으로 청자를 몰아세우기보다 담담한 관조로 감정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개화'는 그 태도가 가장 단단하게 맺힌 결과물이다. 인스턴트 음악이 범람하는 시대에 기꺼이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을 앨범을 깎아내는 고집. 둘만의 새 둥지를 튼 악뮤는 대중을 설득하는 법을 음악의 만듦새 그 자체로 증명했다. 이 특별한 남매는 지금, 한국 가요계에서 가장 굳건하고도 자연스러운 형태의 개화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