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서사의 씨줄, 가족애의 날줄. '김부장'으로 터졌다

저축은행을 다니며 평범하게 살고, 때론 폭력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꾹꾹 참는 아버지 김부장. SBS 새 금토드라마 ‘김부장’의 1부 엔딩은 액션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한데 응집한 장면이었다.
딸 민지(서수민)가 사라진 후, 그 실마리를 쫓기 위해서 찾아온 김부장(소지섭)은 딸을 괴롭히던 주혜리(유지안)에게 행방을 묻고 이를 가로막으며 해코지를 하려는 친구 성민호(황성빈)에게 딱 세 대의 펀치를 날린다. 이렇게 강렬한 첫인상을 시청자들의 뇌리에 그려 넣은 ‘김부장’은 벌써 15%의 시청률을 넘었다.
‘김부장’의 흥행세가 만만치 않다.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코리아 집계로 1회가 전국 가구기준 9.5%를 기록한 드라마는 2회에는 거의 1.5배가 훌쩍 넘는 15.7%를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은 ‘보물섬’ 이후 1년 만에 15%를 넘긴, ‘펜트하우스 3’ 이후 5년 만에 2회 만에 15%를 넘기는 드라마가 됐다. 물론 전작 ‘멋진 신세계’도 화제였지만, ‘김부장’은 다른 의미에서 센세이셔널하다.
‘김부장’의 흥행은 다시 한번 안방극장의 ‘분단 서사’ 강세를 대표하는 현상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막을 내렸지만, MBC에서 막을 내린 ‘오십프로’도 남북한의 교착 서사를 다룬다. 2022년 인기를 얻은 디즈니플러스 ‘무빙’ 때부터 특히 액션물의 경우, 세계관으로 주요한 축을 이루던 분단서사는 올 초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를 거쳐 ‘오십프로’와 ‘김부장’까지 대한민국 ‘K-콘텐츠’에 중심이 됐다.

공교롭게도 ‘오십프로’의 바통으로 타사이긴 하지만 ‘김부장’이 이어받았다는 것이 공교롭다. 그리고 ‘김부장’의 두 축을 이루는 서사의 기둥 아버지와 딸의 ‘부정(父情) 서사’ 그리고 갈등의 축이 되는 ‘남북의 서사’는 드라마의 메시지를 더욱 간결하게 하면서 분명하게 해준다.
사실 액션장르의 드라마에서 남북 간의 서사가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KBS에서 방송된 ‘아이리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화려한 액션과 캐스팅 그리고 해외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던 규모에 현재의 정보전을 그리기 위해서는 남북의 긴장감은 필수적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2010년 KBS 드라마 ‘전우’처럼 아예 과거로 돌아가 전쟁을 다루는 작품도 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소지섭 주연의 MBC ‘로드넘버원’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남북서사를 다루는 작품들은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인 긴장을 배경으로 그 안에 휘말려든 인물의 인간적인 갈등을 다룬다. 로맨스나 우정 등은 다소 부차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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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20년대 남북관계의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 디즈니플러스 ‘무빙’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남북 사이의 초능력자 대결이라는 큰 틀이 있지만 부모세대의 초능력자들이 자녀세대의 초능력자를 구해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남북이 대립하는 상황에만 기대지 않는다. 그 안에는 가슴이 아릴 정도의 모정(母情) 그리고 ‘부정’이 있다.
이미현(한효주)이 그리는 아들 김봉석(이정하)에 대한 사랑이 ‘모정’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장주원(류승룡)이나 이재만(김성균)이 각각의 딸 장희수(고윤정)와 이강훈(김도훈)에게 보여주는 조건 없는 사랑 역시 ‘부정’의 대표성을 지닌다.
이렇게 가족과 결합하면서 남북의 서사는 더욱 파괴력을 지닌다. 그것이 지금 2020년대 드라마 특히 남북관계를 다루는 서사의 드라마가 보편성을 얻는 이유다. 물론 남북서사는 ‘K-콘텐츠’의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다른 국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한국만의 이야기다. 비록 과거처럼 이산가족,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기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섞일 수 없는 체제에 대한 두려움은 긴장감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한국만이 가진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은 ‘가족’이라는 보편성을 업으면서 조금 더 인간의 본성에 다가갈 힘을 얻는다. ‘무빙’이 그 예를 잘 보여줬다면 ‘김부장’은 이를 조금 더 구체화했다.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의 경우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박건(박정민)을 움직이게 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채선화(신세경)의 존재였다. 채선화 역시 엄마의 치료를 위해 갈등의 중앙으로 뛰어든다.

‘오십프로’의 봉제순(오정세) 역시 기억을 잃은 남파간첩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지만, 그의 전형성을 바꿔주는 것은 남한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다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이다. 이 역시 ‘유사가족’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 박절하게 대할 수 없는 봉제순의 아이러니가 보는 사람들에게 웃을 수도 없고 슬퍼할 수도 없는 독특한 감정을 만들어내게 한다.
국내 드라마의 발전에는 여러장르의 발전이 따라왔다. 물론 ‘남북 서사’ 역시 이 가운데 성장을 거듭했다. 이는 분명 한국에 사는 많은 시청자에게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접했던, 다소 뻔한 서사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액션 드라마들은 특히 남북의 서사에 가족의 서사를 입혀 훨씬 복잡하고 다단한 캐릭터를 그려낸다. 최근 ‘김부장’의 파괴력은 이 서사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얽히면 아직도 힘이 있는 이야기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이끄는 ‘한국다운 것’. 결국 분단국가라는 정체성은, 대한민국 역사의 큰 슬픔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속에 ‘한국다운 것’일 수 있게 하는 차별성의 원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