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흥행 기록 경신하며 300만 돌파
모두에 잊힌 피터 퍼커, 관객들은 더 그를 사랑했다
빌런 구하고 품은 진정한 슈퍼히어로로 성장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식사를 하고 익숙한 길을 오가며 늘 보던 사람들과 하루를 보낸다. ‘쳇바퀴 같은 일상’이라며 지겨워하지만, 세상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만 그들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 홀로 남겨진다면 나는 과연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쾌속질주 중인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이렇게 홀로 남겨진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역할에 과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는 매일 순찰을 돌고 악당을 체포하며 뉴욕 시민 모두가 사랑하는 슈퍼히어로로서 업적을 쌓는다. 뉴욕시로부터 받은 황금 열쇠는 그 수고의 증거다. 하지만 이제 그는 MJ(젠데이아)의 연인도, 네드(제이콥 배덜런)의 절친도, 어벤져스의 동료도 아니다. 그는 독립된 하나의 ‘스파이더맨’일 따름이다. 그 안에 ‘피터 파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철저한 고립은 당연히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부른다. 피터가 스파이더맨과 실제 자신 사이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듯, 그의 몸에서도 거미 DNA와 인간 DNA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한층 강화된 능력이 자연스레 뒤따르지만 그만큼 통제되지 않는 공격성도 커진다. 피터 자신도 몸이 변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MJ에게만이 아니라 피터 자신에게도 편지 한 통을 남기라던 진 그레이(세이디 싱크)의 말은 잔인하지만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잘난 체하며 스파이더맨을 농락하던 진 그레이도 결국 상처받은 영혼 중 하나다. 상황만 다를 뿐 피터 파커와 동병상련의 처지다. 두 사람 모두 특별한 능력 때문에 두려움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본격적인 MCU 편입을 앞둔 엑스맨 세계관의 핵심도 이런 차별과 배척의 서사다.

피터 파커가 관계를 잃어 홀로 남겨진 존재라면, 엑스맨의 뮤턴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에서 고립된 존재들이다. 원작 속 뮤턴트는 이른바 ‘X-유전자’를 타고난 존재다. 인류는 이들을 ‘뮤턴트’(돌연변이)라 부르며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이런 배척의 시선을 포용하고 인류와 조화를 이루려 했던 인물이 프로페서 X, 찰스 자비에다. 반면 이를 무력 투쟁으로 타파하고자 했던 인물이 매그니토다. 엑스맨 시리즈는 뮤턴트를 배척하고 끝내 말살하려는 인류의 모습을 통해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잔혹함을 강조했다.

이번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사회상도 엑스맨 시리즈 속 인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을 납치·감금하고 비인륜적인 강제 실험에 동원한다. 이 설정 하나로 진 그레이가 속한 엑스맨 세계관의 핵심 갈등이 MCU에 이식된다. 진 그레이와 스파이더맨 역시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통제하고 제압해야 할 대상이 되며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
두 사람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하나의 상처받은 영혼이 있다. 바로 퍼니셔(존 번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서 퍼니셔의 위상은 조금 특별하다. 과거 시리즈에서 악당을 총칼로 잔인하게 제압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퍼니셔는 이 작품에서 피터 파커가 모든 것을 잃고 ‘사람을 구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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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인간이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피터 파커의 고독은 관계를 박탈당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피터는 ‘아이언맨의 후계자’도, ‘뉴욕 시민의 사랑을 받는 영웅’도 아닌 자신만의 원칙을 지닌 독립된 존재로서 자신을 괴롭히던 진 그레이를 구하고 품는다.
모두의 기억에서 피터 파커는 사라졌지만, 끝내 사람을 구하는 그의 선택 안에는 피터 파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가 피터 파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듯, ‘눈앞의 사람을 돕는다’는 스파이더맨의 원칙도 흔들리지 않는다.
영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