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전투기 몰고 귀순한 이웅평, 15억 한푼도 못쓰고 사망한 이유 [종합]

'꼬꼬무' 전투기 몰고 귀순한 이웅평, 15억 한푼도 못쓰고 사망한 이유 [종합]

한수진 ize 기자
2026.09.0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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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꼬무'는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의 화려한 이면과 안타까운 생애를 조명했다. 이웅평은 귀순 후 15억 6,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으나 암살 공포와 북에 남겨둔 가족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갔다. 결국 그는 간이식 수술 후 가족에 대한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고통받다 2002년 향년 48세로 사망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꼬꼬무'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이웅평 대위 미그기 귀순 사건'의 화려한 이면과 그의 안타까운 생애를 조명했다.

지난 3일 방송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239회는 '기수를 자유로 돌려라!-북에서 온 이웅평' 편으로 꾸며졌다. 온앤오프 효진과 가수 청하, 배우 윤유선이 이야기 친구로 출연해 감시와 공포, 북에 남겨둔 가족을 향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 이웅평의 삶을 되짚었다. 이날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전국 평균 2.7%를 기록하며 전회차(2.1%)보다 소폭 상승했다.

북한의 최정예 군인이자 공군 대위였던 이웅평은 휴가 중 찾은 바닷가에서 라면 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봉지 뒷면에 적힌 "유통 과정에서 변질된 제품은 즉시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는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남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굳건했던 믿음에 균열을 냈다. 여기에 친척 문제로 아버지까지 숙청당하자 체제의 모순을 절감한 그는 목숨을 건 탈출을 결심했다.

1983년 2월, 당시 29세였던 이웅평은 비행 훈련 도중 편대를 이탈한 뒤 레이더망을 피해 초저공비행을 감행했다. 수도권 전역에 대공 경계경보가 발령되고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이 그를 에워싸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웅평은 항복 신호를 보낸 끝에 수원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북한의 비밀을 폭로하러 왔다"며 귀순한 이웅평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당시 고급 아파트 78채를 살 수 있는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구소련의 최첨단 주력 전투기였던 미그기와 북한의 군사 기밀을 확보한 대가였다. 이웅평은 공군 소령으로 정식 임관했다. 그의 긴박했던 귀순 과정을 들은 청하는 "소름 돋는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이웅평은 한 해 900회가 넘는 안보 강연을 소화하고 150만명의 인파를 불러 모으며 '반공 아이돌'로 떠올랐다. 당시 대통령보다 많은 일정을 소화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암살과 독극물 테러에 대한 공포, 국가기관의 감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웅평이 감시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아내 박선영 씨의 역할이 컸다. 과외 교수의 딸이었던 박선영 씨와 첫눈에 반해 결혼한 그는 아내가 신혼집의 도청 장치를 직접 뜯어내고 보안사령관을 찾아가 항의한 뒤에야 자유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웅평은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탈북민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7년 함경북도 청진의과대학 의사 김만철 씨 일가 11명이 일본 해역에서 표류한 뒤 대만으로 이송되자 정부의 비밀 특사로 현지에 급파됐다. 그는 김만철 씨 일가를 설득해 대한민국 귀순을 이끌어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이후에도 귀순 군인은 물론 간첩까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일상을 공개하며 전향을 도왔다. 북한 주민과 군인들이 자유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절마다 가족사진을 찍어 대북 전단에 싣기도 했다. 윤유선은 "굉장히 용감하다"며 두려움을 무릅쓴 그의 행동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웅평은 1997년 간경화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며 또 한 번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당시 국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웠던 간이식 수술을 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수술을 앞두고 "통일을 못 봤다"며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웅평은 이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누나를 비롯해 가족들이 겪은 비극을 전해 듣고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귀순 당시 받은 보상금 15억 6,00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통일 후 북한의 가족들에게 전하려고 남겨둘 만큼 고향을 향한 그리움도 컸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이웅평은 2002년 향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윤유선은 "너무 허망한 죽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방송 말미 아내 박선영 씨는 "그가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과 울림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해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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