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 사이…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 [IZE 진단]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 사이…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 [IZE 진단]

최재욱 ize 기자
2026.09.29 09:32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상영 중단 요구...제작사 "정치적 목적은 없어".

영화 암살자(들)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며 정치권의 공방으로 번졌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여권은 역사적 비극을 왜곡하고 박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며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사는 특정 결론을 확정하거나 왜곡할 의도가 없는 순수한 창작물이라며 정치적 목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추석 극장가 정상에 오른 영화 ‘암살자(들)’(감독 허진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역사 왜곡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정쟁의 대상이 되는 모양새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릇된 표현과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일부 정치권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난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은 28일까지 163만 관객을 동원했다. 명절을 겨냥해 공개된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하지만 연휴가 끝난 직후 역사 왜곡 공방이 화두로 떠올랐다.

‘암살자(들)’은 1974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벌어진 영부인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당시 이 사건은 북한·조총련을 배후에 둔 문세광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고,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은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또 다른 공범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들)’이라는 표현이 제목에 포함된 이유다. 아울러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박정희 정권 혹은 중앙정보부가 피격 사건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가설적 의혹, 즉 음모론도 건드린다. 박 정권이 이를 주도했다는 직접적 묘사나 단정은 없지만, ‘암살자(들)’을 본 일부 관객들이 ‘혹시?’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암살자(들)’은 기본적으로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틀을 갖추고 있다. 역사에는 이미 문세광이라는 명확한 범인이 존재하지만, 상상력을 덧댄 영화는 또 다른 범인을 찾기 위해 가상 인물인 기자와 형사들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개봉 전 역사 왜곡 우려에 대해 허 감독은 "이제까지 감춰졌던 진실이나 배후를 밝혀내는 영화로 접근하지는 않았다"면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야권의 반발은 거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28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당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라고 꼬집었다. 흉탄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은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도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틀어 마치 육 여사 피격의 진짜 배후가 박 전 대통령인 것처럼 묘사했다.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고 성토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역시 성명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역사적 비극을 왜곡하는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영화 제작사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데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해당 영화 상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입장을 냈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태가 격화되자 ‘암살자(들)’ 제작진은 28일 오후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며 "‘암살자(들)’은 1974년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공개된 여러 기록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극영화다.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극 중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작품 고유의 창작 의도를 넘어선 정치적 목적은 없으니 순수한 창작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맞서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이나 사실 왜곡 의도가 없다’는 점을 밝혀 ‘순수한 창작물’임을 강조하려는 뉘앙스가 뚜렷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나 정치권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 어떻게 될까? 실제 상영 금지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 씨가 고인을 희화화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1억 원 배상과 다큐멘터리 자료화면 삭제를 판결했다. 하지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이 소송은 1심 판결에 따른 가지급금 1억 원을 영화사 측에 반환하고, ‘그때 그 사람들’이 TV 등을 통해 방영될 경우 허구임을 알리는 자막을 넣도록 한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으로 종결됐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실미도’ 역시 극 중 소재로 쓰인 684부대 훈련병 12명의 유가족이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비록 그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거나 진실성 확인을 위한 노력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내용이 아닌 한 어느 정도 합리적인 근거만 있다면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28일, ‘암살자(들)’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타짜: 원 아이드 잭’에 내줬다. 지난 23일 개봉 이후 처음이다. 이번 논란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영화 평점란에는 ‘암살자(들)’에 1점을 주는 ‘평점 테러’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된다. 그렇기에 사전 검열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하지만 콘텐츠가 공개된 후 이를 접한 관객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힐 권리가 있다. ‘암살자(들)’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고 문제 삼는 목소리 역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며, 제작진 또한 이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부딪치고, 그 과정에서 진실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가 이를 널리 알리려는 노력은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반면 이 자체를 정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관점에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적 셈법이 앞서서는 안 된다.

윤준호(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