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퇴행적 시도에 대한 우려감 커져

"절대 보지 않는다 → 봐줘야 한다 → 볼 만하고 보고 싶다.”
한 영화관계자가 꺼내놓은 ‘한국영화 성장 3단계론’이다.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1960년대에 한국영화는 최고의 황금기를 맛봤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어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관객은 한국영화를 “절대 보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할리우드 직배사가 한국 영화시장에 진출하면서 한국영화의 침체는 더욱 큰 위기감을 불러왔다. 한국영화계는 스크린 쿼터(극장이 연간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기간. 현재는 최소 73일이다) 수호 투쟁을 벌였다. 관객 역시 이에 호응하며 한국영화를 “봐줘야 한다”는, 이른바 ‘문화적 애국주의’의 관람 태도를 드러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부터 관객은 더 적극적으로 한국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앗아간 한국영화의 시장 지분을 지켜주기 위한, “봐줘야 한다”는 관람 행태에서 나아가 한국영화가 “볼 만하고 보고 싶”은 작품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굳혀갔다.
그리고 2000년대, 한국영화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화의 시장점유율을 앞선 것은 물론, ‘꿈의 숫자’로만 보였던 1000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작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과 감독, 배우 등이 연이어 수상하는 성과도 거뒀다. 양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가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이제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는 질적 성장의 시대에 안착한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19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이듬해 전 세계 최고 대중성을 자랑하는 미국 아카데미상의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을 거머쥔 것은 그 절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2020년 초부터 약 3년여 동안 전 지구적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산업은 급격히 힘을 잃어갔다. 감염과 전염을 우려해 극장은 좌석수를 제한했고, 일부는 아예 문을 닫기까지 했다. 관객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영화라고 온전할 수 없어서 산업 붕괴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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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영화계는 산업을 유지하고 회생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펼쳐가고 있다. 관객수와 매출액 규모 등 시장 상황은 전염병 창궐 이전 시기에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영화는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를 다시 생산해내기 시작했고, 외화의 시장점유율도 여전히 앞서고 있다. 해외시장의 관심의 끈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한국영화 성장 3단계론’을 제시한 영화관계자는 한국영화의 이 같은 성장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소재의 제한이란 굴레에서 벗어난 것”을 꼽는다.
한국영화는 ‘암흑기’로 꼽히는 1970~80년대까지 정치권력의 간섭에 갇혀 있었다. 시나리오와 영화는 사전심의라는 이름의 검열에 가위질당하기 일쑤였다. 영화 제작사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설립할 수 있었다. 문을 연 제작사들은 ‘장사가 되는’ 외화를 수입하기 위한 쿼터를 얻기 위한 한국영화 편수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수작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이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었던 건 창작자들의 치열하고도 처절한 노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할리우드 직배 영화에 맞선 영화계의 스크린 쿼터 수호 투쟁이 불러온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커져 가던 즈음인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영화의 상영 전 심의를 의무화한 영화법이 헌법상 사전검열제도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제서야 한국영화는 창의성이라는 기지개를 제대로 켤 수 있었다.
다채롭고 창의적인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풀어줄 만한 소재가 스크린에 투사되기 시작했다. 신선한 기획력과 창의력을 지닌 새로운 인재들도 충무로에 유입됐다. “볼 만하고 보고 싶”은 한국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관객은 이를 크게 반겼다. 이에 힘입어 토착 자본과 지방 배급업자 또는 비디오업자의 전도금(前渡金)에 기댔던 영화 제작 자금도 금융자본과 대기업의 자본으로 대체됐다. 좀 더 안정적인 제작비 수급이 가능해졌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산업화의 단계에 들어서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이처럼 한국영화는 어떤 소재든 함부로 그려낼 수 없고, 권력이 설정한 ‘금기’를 뛰어넘으려 할 때 불어닥칠 엄청난 후과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창작자들의 끊임없이 처절한 창의적 도전과 노력, 이를 극장에서 지지하고 지지할 관객의 발걸음이 아니라면 당대의 한국영화가 맞았고 맞고 있는 어둠은 쉽게 걷히지 못했을 것이며 또 걷히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까지 사실 텔레비전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외부적 요인도 한국영화가 지나온 암흑기의 깊이를 더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죽했으면 ‘안방극장’이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쓰이고 있겠나.
다만 이 같은 과거 상황을 2020년 초 감염병이 창궐한 직후부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 시장 장악력을 크게 확대하면서 영화산업의 위기가 더해졌다는 ‘기시감’의 시각으로 이어간다면 어떨까. 지나친 시각일까.
최근 한국영화가 맞고 있는 극심한 침체 속에서 또 다른 ‘기시감’을 본다. 시장을 둘러싼 외부적 요인이 몰고 온 위기 상황을 쉽게 극복하지 못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다채로운 이야기에 대한 창작자와 관객의 갈증은 얼마든지 풀어갈 힘을 한국영화가 아직은 잃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영화 ‘암살자(들)’과 관련한 소모적 논란의 잡음을 목격해야 하는 시절, 한국영화를 검열과 ‘금기’라는 어둠의 시대로 다시 몰고 가려는 퇴행을 기도하는 자, 누구일까.
윤지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