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하는데 자꾸 서운하고, 서운한데 얼굴을 보면 또 웃는다. 별것 아닌 말에 마음이 상했다가 별것 아닌 대답에 금세 풀린다. '연애박사'의 박민재(추영우)와 임유진(김소현)을 보고 있으면 남의 연애를 구경하다 자꾸 내 기억을 들추게 된다. 저렇게까지 다툴 일인가 싶다가도 그때는 저만한 일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떠올라서다.
ENA 월화드라마 '연애박사'(극본 민효정, 연출 안판석)는 첫사랑의 환상보다 첫 연애의 미숙함을 잘 다룬다.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생 민재와 의류학을 떠나 로봇공학에 도전한 유진은 공부보다 연애가 어렵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모든 게 분명해질 줄 알았는데, 정작 둘이 되고 나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더 많아졌다.
컴퓨터 한 대를 두고벌이는 다툼부터 그렇다. 민재는 관련 지식이 있는 동료에게 먼저 자리를 내준다. 유진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챙긴다는 사실에 서운하다. 새로운 전공에서 제 몫을 못 한다는 불안도 뒤섞였다. 드라마는 이를 철없는 투정으로만 흘리지 않는다. 합리적인 배분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같은 컴퓨터를 보면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엇박자는 계속된다. 유진은 둘만의 시간을 원하지만 민재는 김세진(임진효)이 끼어드는 상황의 문제를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거에 비해 날 안 좋아해"라는 말에는 나를 조금 더 특별하게 대해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자신과 세진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지 묻는 유치함도 낯설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면서 물어야 겨우 안심하던 마음이다.
안판석의 연출은 이런 대화를 서둘러 정리하지 않는다. 연구실과 식사 자리에서 말이 엇나가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마음이 풀리는 과정까지 따라간다. 크게 다툰 뒤에도 마주 앉아 몇 마디를 나누면 금세 웃는다. 그 변화가 변덕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다툼 속에서도 여전히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아서다. 싸우는 장면조차 설레는 이유다.
관계를 걸고 벌인 카드 내기는 그 서툶을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유진은 세진을 물리치려 했지만 민재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내기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에 상처받는다. "결국 내가 진 거네"라는 말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민재는 이별 선언으로 여기고, 유진은 화가 나서 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상대를 좋아하는 만큼 말 한마디를 크게 받아들이고,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자기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둘만의 마음 밖에서 밀려오는 현실도 있다. 민재의 장애를 알게 된 유진의 오빠 임유성(김민석)은 헤어지라고 요구한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거듭 사과하던 민재는 두 사람의 만남은 유진이 선택할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저 다른 건 포기해도 유진이는 절대 포기 안 합니다"라는 말이 절실하다. 좋아한다는 마음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연애에 타인의 기준이 끼어드는 순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층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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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영우와 김소현은 이런 감정을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어설픈 채로 살아 있게 만든다. 추영우는 민재의 날 선 말 뒤에 상처받기 두려운 마음을 남긴다. 이별이 아니라는 확인에 그제야 안도하는 반응에서는 연애 초보의 불안이 읽힌다. 김소현은 서운함과 자존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유연하게 오간다. 토라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순간까지 자연스러워 유진의 감정을 함께 따라가게 된다.
미국 대학 포닥 기회를 둘러싼 갈등도 그래서 더 와닿는다. 민재는 "난 그냥 너한테 최선을 다하고 싶어"라며 한국에 머물려 하지만, 유진은 자신 때문에 꿈을 접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과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같은 선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누가 더 좋아하느냐고 다투던 연인이 이제는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2%대 시청률은 완성도에 비해 아쉽다. 다만 장면의 디테일과 두 배우의 호흡을 알아보는 시청자가 쌓인다면 입소문이 이어질 여지는 충분하다. '연애박사'는 멋진 연애를 보여주기보다 서툴렀던 내 연애를 떠올리게 한다.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왜 그 한마디에 다시 웃었는지. 추영우와 김소현을 보다가 그때의 나를 조금 이해하게 되는 것, 이 드라마가 주는 설렘은 거기서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