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가 만난 건설인]박윤섭 쌍용건설 건축기술부 이사
- 루이비통·힐튼호텔 등 리모델링 맡아 명성
- "베끼기문화 문제…공간·편의 갖춰야 승산"

"오죽했으면 한국을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박윤섭 쌍용건설 건축기술부 이사(51, 사진)는 건축설계에 대한 철학을 묻자 광화문 A빌딩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인 씨저 펠리(Cesar Pelli)의 얘기를 먼저 꺼냈다.
광화문 A빌딩은 외벽 일부를 활용해 휴식공간을 만들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간설계 개념을 도입한 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이후 다른 곳에도 20여개의 비슷한 A빌딩들이 세워졌다.
"빌딩 하나를 만들어 놓고 설계를 베껴 낸 거죠. 창작물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건축물은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기 때문에 위치가 바뀌면 디자인도 그곳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는 걸 무시한 거죠. 씨저 펠리가 자신의 작품집에서 그 빌딩을 북북 찢고 격노한 건 당연한 겁니다. 정말 창피한 일이고 건축업계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박 이사는 이런 식의 행태는 장기적으로 보면 건물 가치를 높이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건축설계에 대한 그의 '내공'은 외모에서도 풍긴다. 준수한 얼굴과 훤칠한 키. 여기에 일명 '베컴 헤어스타일'로 불리는 머리모양과 하얗게 센 머리는 잘 어울린다. 그가 가진 '끼'를 한껏 드러내고 있어 마치 잘 빠진 건축물 같기도 하다.
박 이사는 연세대학교와 미국 UCLA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한 후 80년대 말 지인과 함께 미국에서 '케이넥스트(K-NEXT)'란 설계사무소를 차렸다. 여기서부터 그의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시작된다. 주로 베벌리힐스의 고급주택 설계를 맡았다. 캘리포니아 부동산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부동산 개발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당시 영국이 중국에 홍콩의 반환시점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거든요. 홍콩에 자산가들이 불안하니까 죄다 돈을 빼서 미국에 집을 사들이기 시작한 거죠. 최고급 주택이 불티나게 팔렸어요. 은행에서 대규모로 돈을 빌려 캘리포니아 최고급 휴양지인 팜스프링스에 40~50채를 지었죠. 30대 초반이었는데 한 달에 몇 억씩 벌면서 소위 잘 나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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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악재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헤비급 챔피언인 마이크 타이슨의 저택을 지어서 팔았는데 타이슨이 아내 구타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돈을 떼었다.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어요. 지인한테 사기를 당했고 동업자 한 명이 배신을 해서 손해를 봤죠. 그런 후 결정타가 오더군요.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국이 국방비의 절반을 삭감한 거죠. 군수업체의 대부분이 몰려있는 캘리포니아 경기가 고꾸라졌고 주택 급매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지어 놓은 수십 채 집을 헐값에 경매로 줄줄이 넘겨야 했죠. 은행 빚을 갚으니깐 졸지에 망하더라고요."
1995년 쌍용건설에서 손을 내밀어 한국을 밟았다. 그는 용평리조트의 빌라형 콘도미니엄인 '버치힐' 설계를 맡아 호평을 받았다. 또 청담동 일식집 가게를 루이비통 매장으로 탈바꿈시켜 리모델링업계에서도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힐튼호텔, 앰배서더호텔뿐 아니라 방배동 궁전아파트, 당산동 평화아파트, 도곡동 동신아파트 등의 리모델링을 맡았다.
그가 미국에서 맛 본 쓰라린 실패의 경험은 국내 최고급 건축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자양분이 됐다. 박 이사는 "집값이 30억원을 넘는 하이엔드 시장은 인테리어를 많이 해놓을수록 실패한다"며 "그보다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주인의 취향대로 꾸밀 수 있게 설계해 놓고 최고급 자재와 마감재로 완벽히 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도시형생활주택도 차별을 둔다. 쌍용건설은 대림동에 도시형생활주택 288가구를 하반기 분양할 예정이다. 소형 주택은 돈 없어서 산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요즘 미혼자나 기러기 아빠들은 조금 비싼 건 용납하지만 불편한 건 못 참는다"며 "죽은 공간을 살려내 면적을 최대화시키는 설계의 기술을 적용하고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놓아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로에서 눈길이 가는 건물로 역삼동 GS타워와 포스코빌딩을 꼽았다. 그는 "GS타워는 대로변 안쪽이란 입지적 불리함에도 위치에 따라 외관의 입면을 다채롭게 구성했고 내부 동선도 효율적으로 잘 풀어냈다"며 "포스코빌딩의 경우 두개의 커다란 빌딩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외부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