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의 최근 행보를 보면 채권은행과 건설사들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환기업은 지난 9일 채권은행들로부터 신용위험 정기평가를 받은 결과 구조조정 대상인 'C등급' 판정을 받았고 11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5일 후인 16일 삼환기업은 돌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은행 주도의 워크아웃에 대한 불신이 깔린 결과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채권은행이 곳간을 틀어쥐고 채권회수에만 전념, 돈되는 모든 자산을 팔아넘긴 탓에 결국 회사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게 건설업계의 불만이다.
지난해 월드건설, 올들어선 풍림산업에 이어 우림건설, 벽산건설이 모두 워크아웃 후 회사 상태가 더 악화돼 법정관리로 넘어간 사례다. 이 때문에 워크아웃에 끌려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란 공포가 증폭됐다. 삼환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은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환기업이 워크아웃 진행 과정에서 채권은행들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법정관리 카드를 사용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법정관리 중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은행과 갑을 관계에서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건설사가 워크아웃에서 최소한의 협상력을 가지려면 법정관리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며 "워크아웃에 내몰린 삼환기업 역시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법정관리를 택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삼환기업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다음주에 가능하고 당장 이번주에 돌아올 CP(기업어음) 70억원을 막을 방법이 없어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전략적으로 법정관리를 선택했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삼환기업의 신규자금 지원을 사실상 약속해 놓은 상황이어서 CP 부도 여부는 무의미했다는 것이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신규자금 지원을 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어 다음주에야 지급하겠다고 한 상황이라 이번주 CP 부도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때문에 삼환기업에게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말 것을 알렸는데 예상밖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주채권은행이 일방적으로 부실 낙인을 찍은 데 따른 반발감도 법정관리 선택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당초 삼환기업의 고비는 연초였다. 삼환기업은 지난 1월 회사채 500억원을 비롯해 3월 300억원, 6월 200억원 등 상반기에만 1000억원을 상환해야 했는데 건설사 회사채나 CP발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부 자금으로 갚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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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환기업은 왕십리 민자역사 공사대금 청구 소송을 승소, 공사미수금과 지연이자로 260억원을 회수하는 등 내부 자금으로 회사채를 모두 갚았다. 이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베트남 가스전 지분 5%를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300억원 발행을 눈앞에 뒀다. 이런 상황에서 주채권은행이 C등급을 매기자 삼환기업의 유동성 확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삼환기업은 연초 큰 고비를 넘기고 일부 자산매각이 성과를 내고 있던 시점이었다"며 "채권은행으로부터 갑작스레 C등급 통보를 받고 유동성 확보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억울했던 측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기업을 개선하자는 현행 워크아웃 제도가 왜곡되면서 맹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