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의 덫, 피마르는 건설업계]<2>올해만 3100억 담합 과징금 폭탄.."담합 조장하는 제도부터 고쳐야"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간 건설업체 직원 김모씨(43)는 통역사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 1면에 우리나라 관련기사가 큼지막하게 났다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급히 신문을 구해 읽어보니 4대강사업이 담합 등 부정부패 문제로 실패작으로 남을 처지에 놓였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4대강사업 실패가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김씨는 "마치 우리 건설업체들이 모두 담합과 비리로 얼룩졌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와 무척 속상했다"며 "해외발주처들도 우리 업체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생겼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건설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방위 담합조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미 올들어서만 8개 프로젝트, 31개 건설기업들의 담합을 조사해 검찰고발과 함께 총 31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여기엔 국내 시공능력 평가순위 10위권의 대형 건설기업들이 모두 포함됐다.
담합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행위인 만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담합조사가 단순히 업체간 공동행위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 이유나 배경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담합을 조장하는 발주환경과 입찰제도 등 국내 공공발주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담합 악순환을 끊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10대 건설기업 과징금 1Q 순익의 60%
10일 공정위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공정위가 발표한 건설 관련 입찰담합은 인천도시철도 2호선, 경인운하사업 등 총 8개 프로젝트로 적발된 업체만 31개에 달한다. 거의 대부분 공소시효(5년)를 코앞에 둔 공사들이다. 이중 과징금이 부과된 업체는 29개로 총 3091억원에 이른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상위 10개 업체들에 부과된 과징금은 총 2429억원으로 전체의 78%를 차지했다. 이는 올 1분기 이들 업체들이 올린 순이익(3955억원)의 61%가 넘는 금액이다.
독자들의 PICK!
업체별 과징금은 △현대건설 379억원 △대우건설 367억원 △SK건설 328억원 △대림산업 304억원 △포스코건설 290억원 △현대산업개발 238억원 △삼성물산 200억원의 순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면 불복소송을 할 수 있지만 자칫 체납 가산금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일단 징수하고 소송을 하는 게 보통"이라며 "따라서 당장 실적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담합 조장하는 공공발주 개선 시급"
건설업체들은 공정위의 잇따른 담합제재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무리한 사업추진과 동시다발적 발주 등으로 업체간 공조와 협조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음에도 이 같은 공공발주의 문제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공사가 MB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사업이다. 정치적 논란 속에서 시작된 4대강 사업은 입찰을 불과 두달여 앞두고 정부 인사가 대형건설업체들을 불러 사업참여를 독려하는 등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했고 공사기간마저 대폭 줄였다.
관련 공사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속전속결로 추진된 정부의 계획대로 사업을 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업체간 사전협의와 공구배분 등이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공사비와 낙찰률을 토대로 공공공사의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실적공사비제도 등 정부의 입찰제도도 담합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예컨대 과거에 100원짜리 공사를 80원에 낙찰받았다면 80원을 기초로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식이다. 물가상승분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더욱이 국내에선 공공공사를 수주하려면 정부의 예정가격 이하로만 입찰이 가능하다. 올들어 담합으로 적발된 공공공사 역시 낙찰률이 정부의 예정가격을 모두 밑돈다. 업계에서 공공공사 입찰담합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가 아닌 손해를 줄이기 위한 공동행위'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공공공사 입찰제도는 심의·결정과정의 투명성 부족과 제한된 경쟁여건으로 빈번한 입찰담합을 유발하고 있다"며 "공공공사는 정부가 수요독점적 시장의 가격결정자로 담합근절의 실효성을 높이는 책임 역시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영호 공정위 카르텔 총괄과장은 "업계의 지적이 이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담합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