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규제 풍선효과·공급조절 방침 불안감 해소·대출규제에 실수요자들만 피해

#몇 년째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이 모씨(42)는 최근 급등하는 아파트 가격을 보면서 '이미 늦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월급 인상률은 1년에 겨우 3% 내외인데 1~2년 새 집값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올라서다. 강북 지역 중소형 아파트 분양가가 6억~9억원까지 치솟는 걸 보니 강남 입성은커녕 서울 도심에 사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정부의 규제 여파로 대출받기는 더 어려워졌다.
정부가 불어나는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잇따라 대출 규제 및 주택공급조절 대책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시장 과열을 부추기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부담만 키우고 있다. 집값이 뛰어오르면 그만큼 빚을 늘려야 하는데 그 길을 막아버리니 서민들의 내집마련은 그만큼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7일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 1~10월 평균 청약 경쟁률은 13.91대 1을 기록했다. 청약 광풍이 불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 청약 경쟁률(11.15대 1)을 넘어서는 것으로 같은 기간을 비교하면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올해 청약 열풍은 강남 재건축 시장이 불을 지폈다. 평균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이 넘지만 수십 대 1에서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정부는 올 2월부터 수도권에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강화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청약 열기가 과열되자 정부는 '중도금대출규제 강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분양가의 강남 아파트 시장을 겨냥해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 보증을 해주지 않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아파트 중도금 대출 규제가 처음 적용된 강남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평균 100.6대 1의 경쟁률을 보여 나흘 만에 완판됐다. 이달 분양한 서초 잠원동 '아크로리버뷰'는 올해 수도권 최고 평균 경쟁률인 306.6대 1을 기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제한하자 웃돈(프리미엄)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더 몰리면서 강남 분양 시장의 열기를 더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중도금 대출 규제는 강북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리는 풍선 효과도 가져왔다. 중도금 대출 규제로 강남 진출이 어려워진 실수요와 투자수요가 입지가 좋은 강북의 아파트로 몰리고 있다. 지난 7월 분양한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은 평균 89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뒤 나흘 만에 완판됐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 아이파크'는 모델하우스 오픈일인 지난 14일 대형 포털 사이트에 직장인 인기 검색어 8위에 오를 정도로 시장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분양가도 고공 행진이다. 신촌숲 아이파크 59㎡의 평균 분양가는 6억4000만원대. 발코니 확장과 중도금 대출 이자, 유상옵션 등을 포함하면 강북 59㎡의 7억원 시대를 열었다. 인근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주변에 84㎡가 7억원이 안 되는 아파트들도 많다"며 "조합원들이 막판에 분양가를 올렸는데 분양 승패에 따라 인근 아파트 가격도 뛸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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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정부가 밝힌 '공급조절 카드' 방침도 부동산 시장을 달구는 효과를 가져왔다. 공급과잉 우려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투기 수요를 끌어왔다. 주택 가격 상승을 걱정하는 실수요자들도 분양 시장으로 불러들였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부동산 열풍을 잠재우기보다 실수요자들의 직간접 피해로 연결되는 분위기다.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뛰는 탓에 집을 사기 위해선 은행 대출을 더 늘려야 하지만 정부가 대출을 옥죄면서 실수요자들이 떠안게 될 부담만 급증하고 있다.
집 장만을 위해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 대출을 생각하고는 있는 수요자들도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갑작스럽게 보금자리론의 취급 요건을 강화했다.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가격을 9억원에서 3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아파트 가격이 대부분 3억원을 넘는 서울의 경우, 사실상 연말까지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정부는 지난해 수도권의 청약 1순위의 자격 기준을 완화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며 "올해 각종 대출 규제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저금리에 갈 곳 없는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려 국지적 과열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