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싱가포르식 주택 정책'을 언급하면서 우리 주택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쟁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싱가포르식 모델을 우리 주택시장에 도입할 경우 어떤 부분에 초점에 맞춰질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 주거권 강화'에 방점을 찍은 반면 보수 야권은 다주택자와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가 현실화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싱가포르식 주택정책의 이면에 '증세'가 숨겨져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 방문 중 던진 '부동산 정책 많이 배워가야 할 것 같다'는 발언이 부동산 시장에 '세금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며 "싱가포르식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긴 1주택자 징벌적 과세의 실체를 국민 앞에 밝히라"고 주장했다.
이에 여권은 세금이 아닌 주거 정책 구조를 직시해달라며 정부 지원에 나섰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국민의힘이 있지도 않은 1주택자 징벌적 과세를 들먹이며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하고 있다"며 "대통령 발언의 진의는 '국민 주거권'에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의 싱가포르 발언과 관련, 1주택자 세금 폭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취득세를 최대 12%로 올리면서 싱가포르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여권에서는 또 기존 취득세율(1~4%)이 낮아 다주택자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어렵다며 싱가포르의 추가 취득세 모델(다주택자에 최대 15% 세율)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다주택자 규제가 강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싱가포르 국세청(IRAS)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현재도 '추가 구매자 인지세'(ABSD)를 통해 두 번째 주택을 구매할 때 매매가의 20%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다. 세 번째 주택을 매매할 때는 세율이 30%까지 올라간다. 외국인이 주택을 취득할 때는 최대 60%의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1주택자 보유세는 실거주 여부에 따라 세율이 크게 차이 난다. 실거주 주택에는 '연간 임대가치'(AV)를 기준으로 보유세율 0~32%가 누진 적용되는 데 비해 비거주 주택에는 12~36% 세율이 적용된다. 최고세율이 높은 대신 공제구간을 넓혀 실거주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준다. 싱가포르 정부는 주택가격 상승으로 실거주자 부담이 커지자 8000싱가포르달러(약930만원) 수준이던 실거주 주택 공제 구간을 지난해 1만2000싱가포르달러(약 1400만원)로 확대했다. 비거주 1주택자(임대)와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공제 혜택이 없다.
정부가 공제 축소, 보유세 강화 등 다주택자에 이어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싱가포르식 모델 발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싱가포르는 높은 수준의 주거 안정을 자랑한다. 다만 정부가 주택시장에 깊이 관여해 수요와 공급을 관리하는 구조다.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긴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는 공공이 아닌 민간의 역할이 주택 시장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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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주택개발부(HDB)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이 주거의 중심이다. 인천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체 싱가포르 거주자의 90.8%가 자가를 보유하고 있다. 또 거주 인구 중 약 77.4%가 공공주택인 HDB 아파트에 거주한다. 공공주택은 대부분 99년 동안 임대하는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되며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한 뒤 매각도 가능하다.
싱가포르식 주택 모델을 둘러싼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진보 야권에서는 싱가포르식 99년 임대주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한국형 99년 주택을 제안한다"며 "용산공원, 서초동, 서울공항 등 핵심 입지 공공 부지에 99년간 임대할 수 있는 고품질 공공임대주택을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싱가포르식 주거 모델을 참고해 국내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업 구조를 재편해 LH 중심의 공공이 주도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다. 문제는 현실화 가능성이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동반한다. LH의 부채는 이미 16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공공주택 공급 과정에서 상당한 예산 부담을 떠안고 있다. 공공주택 공급을 위한 토지 매입과 개발 비용으로 발생하는 HDB 적자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형태로 매년 정부 예산의 약 2%가 적자 보전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