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남권은 매물 출회와 거래 둔화로 주춤해졌지만 대출이 가능한 15억원 이하 비강남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며 집값은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전세 매물 급감, 월세 상승 등 역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1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지난달 2일 7만1793건에서 이달 20일 현재 7만4602건으로 2809건(3.9%) 증가했다. 서울 전체를 기준으로 한 가격 상승세도 둔화하는 모습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4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19%로 3월 초(0.32%)에 비해 상승폭이 축소됐다.
다만 지역별 온도차는 갈수록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강남권은 일부 지역이 보합권에 진입한 반면 강북권은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연초 이후 강북권의 아파트 가격 누적 상승률은 이달 중순 기준 약 4%로 강남권(약 3.1%)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임대차 시장의 변화는 더 뚜렷하다. 3월2일 1만7849건이던 서울 전세 매물은 20일 현재 1만5164건으로 2685건(15.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월세 매물은 1만6542건에서 1만4762건으로 1780건(10.8%) 감소했다. KB부동산 기준 서울 전세가격 상승률은 3월 초 0.14%에서 4월 중순 0.20%로 확대되며 물건은 줄고 가격은 오르는 '이중 압박'이 나타나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이 커질 경우 그 영향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보유세 부담 확대와 금리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임대인들이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 같은 흐름은 전세 매물 감소를 가속화하고 임차 수요를 제한된 매물로 몰리게 하면서 주거비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장에서는 전세 '실종'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경기도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500가구 이하 아파트 단지는 전월세 매물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매물 감소와 함께 전월세 상승폭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 대단지인 마포래미안푸르지오(3885가구)는 전세 매물이 13건에 불과하고 전용 59㎡A 타입은 1건만 남은 상태다. 해당 면적의 전세 실거래가는 7억2700만원에서 8억2000만원 수준이지만 유일한 전세 매물의 가격은 9억원이다. 월세 시세도 지난해 11월 250만원(보증금 1억원 기준)에서 320만원으로 뛰었다. 약 5개월 만에 70만원(28%)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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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대출이 가능한 중저가 구간으로 수요가 집중되며 '키맞추기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전월세 매물 부족이 일부 임차 수요를 매수로 전환시키면서 가격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고 향후 조정 시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매물 잠김을 완화해 시장 유동성을 회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공급 기반을 확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임대 공급 확대와 전세보증 안전망 강화 등 임대차 시장 안정 대책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주거비 상승과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보연 세종대학교 부동산AI융합학과 전공지도교수는 "단기적으론 세제 불확실성을 줄여 매물 잠김을 완화하고 시장 유동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인허가 이후 착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병목을 해소해 실제 공급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단순 규제보다 임대 공급 확대와 금융 보완 장치를 병행해야 한다"며 "현재 구조가 지속될 경우 실수요자의 주거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효선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인허가부터 착공까지 절차를 단축하고 정비사업 규제를 완화해 민간 공급을 회복시켜야 한다"며 "획일적 규제보다 수요 특성별 정교한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이어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 민간 임대 공급 확대와 전세보증 안전망 강화를 병행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정형 임대시장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