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됐다. 위기 극복의 대응 과정에서 성과가 나타나면 자기만족에 빠져 재차 위기가 온다는 'CRIC사이클'로 보면 국내 경제가 2년을 주기로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97년 발생한 금융·외환위기(Crisis)는 98년까지 지속됐다. 99년과 2000년에는 빅딜, 워크아웃, 금융·인력구조조정, 금모으기운동 등 다양한 반응(Response)이 있었다. 2001년과 2002년은 경제가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고 외환보유액이 늘어나 IMF관리체제에서 졸업하며 개선(Improvement)국면이 진행됐다. 그러나 2003년과 2004년에는 개선의 과실을 향유하는 가운데 카드채 위기가 발생하는 등 태만(Complacency)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후 가시적인 위기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태만의 시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위기의 발생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 2009년 시행을 앞둔 자본시장통합법 등은 이 같은 태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방지는 금융기관의 대형화·겸업화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나 금융의 뿌리가 강해야 한다.
그런데도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관심은 온통 "어떻게 골드만삭스가 될까" 하는 대형화에 쏠려있는 듯하다. 이 상황에서 사채시장의 폐해나 대부업체의 급성장같이 서민금융의 뿌리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금융의 뿌리를 담당하는 저축은행에 관한 논의는 배제된 실정이다. 서민금융의 기능을 못하는 것은 업계에도 책임이 있지만 지나치게 대형기관에 집중하는 우리 경제의 방향성에도 문제가 있다.
일본경제가 1989년 이후 17년 이상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2위 경제강국인 것은 탄탄한 중소기업의 경쟁력 때문이다. 미국도 국내 금융기관보다 크기가 작은 곳을 포함해 9000개 이상의 지방 및 저축은행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금융기관 점포당 인구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5286명이고, 일본이 5400명인데 비해 미국은 3300명으로 '오버뱅킹'으로 불릴 정도로 그 뿌리가 넓다. 이들 소규모 서민금융기관이 윤택한 이익을 올리며 미국의 금융안정성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서민금융의 기반이 흔들리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서민금융은 건전성 충족과 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서민대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연체율, 고정이하여신비율 등 건전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증가한다.
둘째, 서민금융 서비스가격 구조의 문제다. 은행권 평균 대출금리가 5%대, 저축은행이 11%대인 데 비해 등록 대부업체는 60%, 비등록인 경우는 200%에 육박한다. 현재 일본계 대부업체가 초고금리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2009년 말로 예정된 개정 대금업법 시행을 앞두고 일본 소비자금융업계의 금리상한이 48%에서 18%로 낮아지므로 국내로 몰려오는 일본업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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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저축은행이 2002년 카드대란 이후 소액 신용대출로 크게 몸살을 앓았고, 아직 그 후유증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의 뿌리를 강화해 위기를 방지한다는 관점에서 서민금융 활성화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