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두어층 아래에 멈췄다. 헐레벌떡 올라탄 여자는 아들로 보이는 중학생 남자아이에게 손짓을 한다. 마음 급해 보이는 엄마와 달리 여유 있게 엘리베이터에 탄 남자아이는 엄마가 건네주는 과일을 한 입 베어 문다. 중학생 교복을 입었지만 아이의 키는 이미 엄마의 키를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아이의 책가방은 엄마의 등에 걸려있다. 한 손에 자동차 키를, 다른 한 손에 아침거리를 든 엄마는 주차장으로 가는 짧은 시간, 조금이라도 더 아이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고 싶어서 조바심을 친다.
오늘 아침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 풍경이다. 아침에 본 한 장면만으로 그 집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정이 된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종종거리는 엄마 뒤를 어슬렁거리며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했다. 조금이라도 아이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 ‘사랑의 과잉’ 속에 길들여질 아이를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혹시 그 남자아이는 언제까지나 엄마에게 당연한 듯 가방을 내 맡기게 되지는 않을까.
관심과 보살핌은 꼭 필요한 것이다. 관심이 결핍이 가져오는 비극의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도 넘치면 독이 되는 법. 적당한 때가 되면 과감한 ‘단절의 사랑’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온다. 당장 불안하다고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면 아이는 영영 걸음마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에도 잡은 손을 놓는 단절이 필요한 때가 온다. 보호와 육성의 단계를 넘어 사다리를 걷어차야 하는 때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금융산업이 그런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변화의 소용돌이에 맞서 민첩하게 적응하려면 보호보다는 자율성이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금융분야에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새로 나오고 있다. 금융소비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만드는가 하면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투자여부를 집단지성을 통해 결정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화폐가 국경을 넘어 통용되는 것은 물론 화폐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탄탄한 기술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금융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머잖아 금융과 IT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란 예측을 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우리 금융기업들도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해야 한다. 대형 금융기업이 미처 손대지 못하고 있는 니치 시장을 겨냥한 금융스타트업도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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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지금 우리 금융기업의 현실은 덩치만 컸지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누가 행장을 할지, 어떤 상품을 만들지 모두 정부가 정한다.
정부의 과잉 보살핌이 독이 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핀테크란 새로운 변화에 금융기업들이 적절히 대응하려면 지금 정부가 ‘단절의 사랑’을 보여줘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금융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하되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과감한 징계를 통해 일벌백계해야 한다.. 시스템이 악성코드에 감염되거나 대규모 정보유출이 일어나도 정부가 나서 해결책을 마련하느라 바쁘다. 이렇게 정부가 많은 역할을 대신해주는 데도 금융기업들은 각종 규제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손을 놓아야 할 때 과감하게 손을 놓고, 넘어져보는 기회를 주는 것도 사랑이다. 기업도, 산업도 적절한 실패를 딛고 성장한다는 것을 금융당국도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