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자와 나오키의 '나사', 그리고 한국 은행의 '우산'

[기고]한자와 나오키의 '나사', 그리고 한국 은행의 '우산'

박기태 금융위 포용금융전략추진단 정책서민분과 위원(법무법인 한중 변호사)
2026.09.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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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금융위원회 포용금융전략추진단 정책서민분과 위원) /사진제공=본인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금융위원회 포용금융전략추진단 정책서민분과 위원) /사진제공=본인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주인공은 은행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나사 공장을 운영했다. 거래처의 도산으로 자금난에 빠지자 아버지는 오랫동안 거래해 온 은행에 추가 융자를 부탁했다. 은행은 이를 거절했다. 아버지는 위기 앞에서 세상을 등진다. 아들은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바로 그 은행에 입사한다.

한국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보면 씁쓸한 이질감이 든다. 극 중 악덕 은행조차 그 나사 공장을 직접 들여다보고 평가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은행들은 그 매몰찬 거절조차 하지 않는다. 번듯한 담보가 없는 나사 공장은 시작부터 은행의 고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아파트라는 확실한 담보와 획일화된 신용점수에 좌우되고 자영업자 대출은 보증기관의 보증서 유무로 결판난다. 담보와 보증서만 확인하는 기계적인 과정에 은행의 주체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고 판단이 생략된 곳에 진정한 '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심사하지 않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 담보대출이 변제되지 않으면 경매가 실행되고, 보증부 대출이 부실화되면 보증기관이 대위변제하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전가된다. 빚의 늪에 빠진 채무자는 결국 법원과 신용회복위원회가 수습한다.

물론 은행이 반드시 모든 대출을 발로 뛰며 심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한 대출만 실행하는 은행도 있을 수 있다. 그 경우 이윤도 적어야 한다. 이자는 본래 치열한 심사와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을 감수한 대가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은행 이자이익은 60조4000억원, 순이익 24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흔히 '포용금융'이라고 하면 취약계층을 돕는 시혜적 조치로 여기지만 본질은 왜곡된 수익 구조를 정상화하는 데 있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로 리스크 없이 거둔 막대한 초과 이익은 사회적 기여로 환원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선의에 기댄 갹출이 아니라 명확한 '룰(Rule)'로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로 은행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자행 계좌를 통해 발생한 사기 피해 방지, 연체 발생 전 선제적인 채무 조정 등은 응당 은행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셋째로 이자 장사를 위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짬짜미 행위나 은행이 사용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했다면 엄중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

모든 과제는 하나의 명제로 귀결된다. 책임을 다하고 그 책임에 걸맞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 금융업의 흔들릴 수 없는 본질이다. 당장의 번듯한 담보가 없더라도 사람의 잠재력과 사업 계획을 읽어내고 자금을 수혈하는 것이 은행의 진짜 존재 이유다.

한자와 나오키의 아버지는 비 오는 날 은행이 우산을 주지 않아 쓰러졌다. 작금의 한국 은행들은 애당초 담보라는 튼튼한 우산을 스스로 든 사람에게만 안전하게 문을 열어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포용금융은 금융이 시장경제의 혈관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오게 만드는 치열한 혁신이다. 책상머리를 떠나 기름때 묻은 나사 공장에 직접 뛰어들어 그 가치를 들여다보는 은행원. 포용금융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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