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지난 세제](종합)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내년 근로소득세 수입도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월급 생활자들의 세 부담이 커지는 이른바 '조용한 증세'가 현실화하고 있다.
13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내년도 근로소득세 수입 전망치는 102조4446억원이다. 이는 내년도 국세수입 예산안에 반영된 수치로, 올해 전망치(73조2482억원)보다 39.9% 늘어난 규모다. 근로소득세 수입이 100조원을 넘어서는 건 처음이다.

내년 근로소득세 수입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건 대기업들의 성과상여금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 국민의 소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소득세 과세체계의 영향 역시 적지 않다는 평가다.
2024년 기준 총급여 1억원을 초과한 사람은 154만5725명이다. 10년 전인 2014년(52만6406명)과 비교하면 2.94배 늘었다. 2009년(19만6539명) 대비로는 7.86배 증가했다. 2009년 1.4%에 불과했던 억대 연봉자 비율은 2024년 7.3%까지 올라갔다.
소득 증가 속도에 비해 소득세 과세체계의 변화는 더디다. 소득세는 근로소득 등 다양한 소득에서 각종 공제액을 뺀 후 과세표준을 산출한다. 과세표준에서 세율을 곱하면 산출세액이 나온다.
현행 소득세 과세표준은 총 8구간(세율 6~45%)이다. 과세표준이 올라갈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누진 체계다. 그동안 숱한 개편이 이뤄졌지만, 과세표준의 큰 틀 자체는 잘 바뀌지 않았다.
가령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 구간(세율 35%)은 2008년 이후 18년째 유지되고 있다. 임금과 물가가 오르는 동안 과세표준 구간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명목소득이 늘어난 근로자가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2월 "물가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월급쟁이는 봉인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득세 과세표준을 물가 수준에 맞춰 올리는 물가연동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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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당국도 소득세 체계 전반을 살펴보고 있지만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관련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소득세 체계 개편의 걸림돌이었던 세수 감소 우려는 최근 세수 여건 개선으로 다소 완화됐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와 임금이 올랐는데 과거와 같은 금액을 높은 세율 부과 기준으로 계속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매년 조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3~5년마다 과세표준 구간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2월 페이스북에 '월급쟁이는 봉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월급쟁이가 낸 세금이 60조원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인용했다. 월급쟁이 세금은 근로소득세를 지칭한다.
이 대통령은 당시 "물가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초부자들은 감세해 주면서 월급쟁이는 사실상 증세해 온 건데, 이거 고칠 문제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68조4216억원이었던 근로소득세 수입은 올해 73조2482억원, 내년 102조4446억원으로 증가한다. 근로소득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직장인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었다는 의미다.
월급과 성과급이 많이 올라서 세금을 많이 냈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비정상적으로 세금을 많이 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근로소득세가 그렇다. 이 대통령의 인식처럼 '사실상 증세' 혹은 '조용한 증세'가 이뤄지고 있다.
◇'월급쟁이 세금', 근로소득세가 뭐길래?
근로소득세를 좌우하는 건 과세표준과 세율이다. 근로소득에서 각종 공제액을 빼면 과세표준이 나온다. 세율은 과세표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 과세표준이 높아질수록 세율도 올라가는 누진 체계다.
현재 근로소득세 과세표준은 △1400만원 이하(6%·이하 세율) △5000만원 이하(15%) △8800만원 이하(24%) △1억5000만원 이하(35%) △3억원 이하(38%) △5억원 이하(40%) △10억원 이하(42%) △10억 초과(45%) 등 8구간이다.

각종 공제액을 뺀 과세표준이 600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1400만원까지는 6%를 적용해 84만원, 1400만~5000만원 구간은 15%를 곱해 540만원, 나머지 5000만~6000만원 구간은 24%를 적용해 240만원 등 총 864만원의 산출세액이 나온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매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연봉이 오른다. 이에 따라 근로소득세 세율도 달라진다. 8800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았다면 최고세율이 24%다. 하지만 몇 년 새 연봉이 올라 연봉 1억원을 받는다면 8800만원을 초과한 구간에선 세율이 35%다.
이처럼 근로소득세는 연봉이 오른 만큼 더 높은 비율로 세금을 더 걷는 구조다. 문제는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거 직장인들의 꿈이었던 '억대 연봉자'는 2024년 기준 154만5725명이다. 전체 과세 대상자의 7.3% 수준이다. 2009년 억대 연봉자는 전체 과세 대상자의 1.4%(19만6539명) 수준이었다. 15년 동안 억대 연봉자는 7.86배 늘었고, 그만큼 흔해졌다.
◇1인당 국민총소득 4만불 시대…현실 못 따라가는 제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2008년 2542만1000원에서 2025년 5257만원(잠정치)으로 2.14배 증가했다. 달러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1만9916만달러에서 3만6963만달러로 늘었다. 올해는 4만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하지만 이 기간 근로소득세 과세 체계는 미세 조정만 이뤄졌다. 2008년 이전에는 과세표준이 △1000만원 이하(8%) △4000만원 이하(17%) △8000만원 이하(26%) △8000만원 초과(35%) 등 4구간이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1200만원 이하(8%) △4600만원 이하(17%) △8800만원 이하(26%) △8800만원 초과(35%) 등으로 과세표준을 최대 10% 상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한 조치였다.
이후엔 과세표준을 세분화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2008년 4구간에서 2023년 8구간으로 늘었다. 저소득층의 부담은 줄이고, 초고소득층의 부담은 늘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산층이 포함된 과세표준 8800만원 구간은 2008년 이후 18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이 대통령의 표현처럼 '월급쟁이가 봉'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적인 증세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직장인들은 세율이 높은 과표구간으로 점차 이동해 사실상의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소득세 기본공제 역시 사실상의 증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소득세 기본공제는 2009년 150만원으로 정해진 후 17년째 그대로다. 민주당은 지난해 소득공제를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올리는 법 개정에 나섰지만, 최종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일각에선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2007년 세법 개정 당시 국회는 검토보고서에서 "과표구간 조정이나 소득공제 등에 물가연동제를 접목해 안정성을 제공하는 방안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가와 임금이 오르는 동안 소득세 과세표준이 장기간 제자리에 머물면서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이 사실상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표구간과 각종 공제액을 물가에 연동하거나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명목소득과 실질소득의 괴리다. 물가 상승에 따라 월급이 올라도 구매력이 그대로라면 실질소득은 늘지 않는다. 그러나 과표가 고정돼 있으면 더 높은 세율 구간에 진입해 세 부담은 커질 수 있다.
현행 소득세는 과표에 따라 6~45%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하위 과표구간은 2023년 한 차례 조정됐지만 35% 세율이 시작되는 8800만원 기준은 2008년 이후 18년째 그대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에 따른 명목소득 증가가 소득 대비 세 부담 확대로 이어지면 실질 구매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과표 구간과 소득공제액에 물가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양가족공제 등 정액 공제도 오랫동안 조정되지 않아 가계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조정 주기와 관련해 오 교수는 매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소득세법에 3~5년마다 물가 변동을 검토하도록 명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한 번 고쳐놓고 10년, 20년 그대로 두다가 문제가 제기되면 손보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창남 전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 기준 전반을 물가에 연동해 매년 자동 조정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안 교수는 "과표와 공제액을 함께 조정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에 따라 늘어난 명목소득에 세금을 더 물리는 결과가 된다"며 "한 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라 매년 자동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득세 부담이 낮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오 교수는 "최고세율과 지방소득세를 합친 고소득자의 한계세율이 높은 데다 사회보험료 등 추가 부담도 있는 만큼 한국의 소득세 부담이 낮다고만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간접세와 사회보험료 등 준조세까지 포함한 전체적인 세 부담을 따져 국제 비교를 해야 한다"며 "정부가 확보해야 할 세수 총액에서 출발하기보다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세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적정한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 호황에 따라 세수가 증가한 만큼 지금이 세제 개편의 적기라는 주장도 나왔다. 안 교수는 "지금은 반도체 기업이 잘되면서 세수가 늘어 세제를 개편할 여력이 생겼다"며 "경제가 성장해 과세 기반을 넓히고 근로소득자의 세 부담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도 과표 조정에 따른 세수 감소 우려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가 예상보다 많이 걷히는 지금은 세수 부족을 걱정할 시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물가연동제의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도입 시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국 소득세제는 누진도 자체는 높지만 개인소득세로 걷는 세수가 적어 재분배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며 "과표 8800만원 기준을 상향하면 주요 세수 기반이 더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소득층의 세율을 추가로 올리기보다 각종 공제를 정비하고 중간소득층 이하까지 세원을 넓혀 전체 소득세수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세 부담과 세수 비중이 적정 수준에 도달한 뒤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 반도체 세수 증가로 당장의 증세 압력은 줄었지만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에 대비하려면 중장기적인 세수 확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입법이 이어진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월 2027년 적용 과표구간을 우선 상향한 뒤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미애 의원도 지난 4월 과표구간별 기준금액을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