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K컬처의 그늘, 암표공화국 (上)

"우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있어서 절대 안 잡혀요. 이 대화방도 10분 뒤 터집니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인 텔레그램을 통해 한 아이돌 그룹의 공연 티켓을 문의하자 '10분 후 방 삭제' 알림이 왔다. '10분 떴다방' 판매자는 자신들이 중국과 한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다국적군'이라고 소개하며 "공연이나 야구, 영화표 등 모든 표를 구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앱 아이디를 수시로 삭제하며 10분 간격으로 '떴다방' 형태로 운영하는데다 직접 만나 표를 전달한다는 단속 회피 '꿀팁'까지 전해줬다.
3일 머니투데이가 텔레그램과 중화권 SNS(소셜미이더) 샤오홍슈, 중고나라 등 플랫폼에서 공연과 스포츠, 영화 등 50건의 입장표를 검색한 결과 이 중 43건의 암표 판매를 확인했다. 올라와 있지 않은 공연이나 야구 경기의 표를 구해주겠다는 글이나 예매를 대신해주겠다는 글도 수백건이 넘었다. 한 판매자는 문의 전 강화된 암표방지법을 먼저 언급하며 "예매 대행은 절대 안 걸린다"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이 암표를 근절하겠다며 도입한 일명 '암표방지법'(개정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이 지난달 28일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편법 거래는 여전히 성행 중이다. 암표 거래가 적발되면 부정판매 금액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신고자에게는 포상금도 지급된다. 예매처와 중고 거래 플랫폼이 관련 정보 제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하지만 암표방지법 강화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기반을 둔 플랫폼을 활용하거나 다른 거래에 끼워 팔기, 더미(가짜) 가격, 예매 대행 등 꼼수는 계속되고 있다. 단속 강화가 암표상들의 판매 수법만 교묘해지도록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꼼수'의 형태도 다양하다. 거래 후 아이디·대화방을 지워버리는 '10분 떴다방'은 내역 자체가 삭제되기 때문에 적발조차 어렵고, 중국·태국 등 해외 플랫폼 역시 수사망 바깥이다. 형사 사건 전문인 한 변호사는 "(개정된 법령이)처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 집중하다 보니 허점이 곳곳에서 보인다"며 "법령을 촘촘하게 짜지 않으면 정상 거래를 위축시키고, 암표상의 꼼수만 늘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예매 대행이나 '다른 물건을 사면 티켓을 사은품으로 보내주겠다'는 식의 편법 거래 역시 규정의 처벌 대상이 아니다. 취소표를 이용한 개인 간 거래를 암표 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했다. '9999만원'이나 '추후 협의' 등 '더미 가격'으로 올린 판매글도 단속 조건인 '과도한 이익'이라고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 법조계 해석이다.
꼼수 거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암표방지법 시행 후 20일간 암표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는 총 4907건으로 시행 전보다 36.5배 증가했다.
독자들의 PICK!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점차 암표 판매 수법이 교묘해지고, 기술적·위치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책적 규제에 따른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급자 단속도 중요하지만 암표 구매를 지양하도록 수요자 중심의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료로 개방된 한강공원에도 '자릿값'이 붙었다. 지난달 5일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앞두고 중고거래 게시판에는 15만~20만원을 받고 명당을 맡아주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주최사가 파는 관람석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 자리를 먼저 차지해 돈을 받는 거래였다.
공연·스포츠 암표 처벌을 강화한 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논란은 영화관과 무료 축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관람 기회를 선점해 이익을 얻는 방식은 비슷해도 적용할 법과 대응 수단은 제각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대책이 공연·스포츠 입장권에 집중되면서 다른 분야의 공백이 드러났다.
공연·스포츠에서는 되팔이를 생업으로 삼은 사례가 나왔다. 경기북부경찰청이 지난달 구속 송치한 30대 남성은 2018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표 8967장을 되팔아 판매액 24억원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2019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콘서트 표를 11만원에 사 300만원에, 2025년 세븐틴 팬 미팅 표를 11만원에 사서 180만원에 되팔았다. 범죄 수익으로 아파트와 상가를 산 것으로 조사됐다.
관람 기회의 희소성이 예매 경쟁을 웃돈 거래로 바꾼다. 공연과 경기는 날짜와 좌석 수가 정해져 공급을 곧바로 늘리기 어렵다. 좋아하는 가수나 팀을 보려는 관객에게 다른 행사가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재판매가 불법은 아니다. 공연·스포츠 표는 주최사·공식 예매처 등 판매 권한이 있는 자의 동의 없이 상습 또는 영업으로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거나 알선하면 '부정판매'가 된다. 정상 구매한 표를 구입가 이하로 양도하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할인받아 산 표라면 표시된 정가가 아니라 실제 구입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한 장을 한 번만 팔아도 영업성이 인정되면 부정판매가 될 수 있다. 매크로 구매가 아니어도 이익에 대한 기대와 거래를 계속할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셈이다. 되팔 목적으로 예매 절차를 우회·방해해 샀다면 판매하지 않아도 '부정구매'가 된다. 법 위반이 아니어도 양도 금지 약관에 따라 티켓이 취소될 수 있다.
영화에서는 특정 상영관의 희소성이 웃돈으로 이어졌다. 8월 '오디세이'는 원본 아이맥스 화면비를 온전히 볼 수 있는 CGV 용산아이파크몰 특별관에 관객이 몰렸다. 10만원대 판매글이 올라왔고 일부는 15만~30만원에 거래된 사례도 전해졌다. 영화보다 특정 화면과 좌석에서 보는 경험에 수요가 집중된 경우다. CGV는 해당 상영관의 예매를 한시적으로 1인당 하루 최대 4장으로 제한했다.
특히 영화는 공연·스포츠와 달리 암표를 제재할 법적 근거도 제대로 없다. 현행법상 영화 관람권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부정 발급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 한 제재하기 어렵다. 게시물 삭제나 계정 제재 등도 플랫폼과 영화관의 자율 협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불꽃축제 같은 무료행사는 규제의 경계가 더 복잡하다. 무료 공원 자리를 선점해 넘기는 거래는 입장권 재판매가 아니어서 강화된 공연·스포츠 암표 규정으로 제재하기 어렵다. 서울시 요청으로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자리 판매·대여를 금지했지만, '돗자리 판매'로 위장한 게시물이 이어졌다.
공연 분야도 실제 대응이 과제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 시행 후 20일간 암표 신고는 일평균 245건이었다. 전임 2명과 겸임 1명이 맡고 있다. 신고가 폭증한 데 비해 이를 처리할 전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법이 있어도 실제 단속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공연이 다 끝난 뒤 암표상을 처벌해도 관람객들이 놓친 기회는 되돌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