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 개량돼도 석탄소비 느는 '제본스 역설'
AI 산업 발전 방향·속도 분석에 160년만 소환
AI 수요 증가 사이클은 직선 아니 불규칙 곡선

대학에서 경제사를 공부할 때 이해하기 힘든 학자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다. 산업혁명의 한복판을 살았던 그가 왜 뜬금없이 태양 흑점으로 경기변동을 설명하려 했을까. 당시 농업의 비중이 컸기에 기후와 작황의 영향을 중시한 측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흑점보다 '주기(Cycle)'를 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호황과 불황이 왜 반복되는지 그 파동을 집요하게 추적한 경제학자였다.
태양흑점설에 앞서 1865년 제본스는『석탄 문제』에서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냈다. 증기기관의 연료효율이 좋아지면 석탄 소비가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동력비용이 낮아지자 증기기관은 공장·철도·선박으로 퍼졌다. 영국 석탄 생산량은 1854년 6470만 톤에서 1913년 2억8700만 톤으로 4배 넘도록 늘었다. 소위 '제본스의 역설'이다.
그러나 석탄 소비의 장기 추세가 우상향한다고 그 길의 모양까지 직선은 아니었다. 경기와 전쟁, 공급제약에 따라 석탄가격도 급등락을 반복했다. 1890년대 후반 호황으로 수요가 급증하자 1900년 유럽 석탄가격은 전년 대비 10~50% 급등했다. 제본스는 산업의 거대한 방향에서 증기기관과 석탄이라는 '추세(Trend)'를 읽었고 그 안의 출렁임에서는 '사이클'을 찾았다.
160년이 지나 제본스가 AI 시대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연산효율이 높아지고 가격이 싸질수록 GPU·HBM·데이터센터의 수요가 폭발한다는 논리다. GPT-3.5 수준의 추론비용은 2022년 11월 100만 토큰 당 20달러에서 2024년 10월 0.07달러로 280분의 1 이하가 됐다. AI를 쓰는 가격은 급락하는데 AI를 만드는 핵심 부품은 오히려 귀해졌다. 제본스가 돌아온 듯하다.
그러나 AI 혁명을 160년 전의 역설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AI에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한다. 첫째, '수요의 제본스 효과'다. 연산비용이 내려갈수록 AI는 코딩·의료·금융·제조·에이전트로 확산된다. 연산 한 번의 자원은 줄어도 실행 횟수가 폭증하면 총소비는 증가한다.
둘째, '공급의 반도체 사이클'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수요가 폭발하면 가격과 투자가 뛰지만 공급이 빠르게 증가하면 과잉으로 돌아선다. 세계 반도체 매출은 2018년 4688억 달러에서 이듬해 12% 감소했고, 2022년 5741억 달러에서 다음해 8.2% 줄었다가 2025년 7956억 달러로 26.2% 급증했다. 장기 성장과 순환 사이클은 언제나 공존한다.
셋째, '기술의 자기증폭 효과'다. 석탄은 태우면 사라지지만 AI가 만든 코드와 지식은 복제되고 다시 생산에 투입된다. AI는 반도체 설계와 데이터센터 최적화를 돕고 다시 다음 AI의 생산성을 높인다. 석탄은 더 좋은 증기기관을 설계하지 못했지만 AI는 더 나은 AI를 만드는 데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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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수요에는 제본스가, 공급에는 반도체 사이클이, 기술에는 자기증폭이 있다. 제본스의 역설은 AI 수요의 장기 방향을 설명하지만 반도체 가격과 기업이익, 주가의 상승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AI 혁명이 구조적이라는 것과 AI 투자의 수익률이 구조적이라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제본스는 산업혁명을 논하다 느닷없이 태양으로 돌아간 괴짜가 아니었다. 석탄에서 거대한 '추세'를 읽고 흑점에서 그 안의 '사이클'을 찾으려 했다.
그가 오늘날 AI 열풍을 본다면 폭발하는 사용량에 자신의 역설이 증명됐다고 웃을까? 아니면 과열되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건설을 보며 다음 사이클의 기복을 생각하고 있을까? 제본스의 역설은 AI가 나아가는 미래의 방향성을 보여주지만, 사이클은 그 길이 직선이 아님을 경고한다.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역설의 제본스' 뿐만 아니라 '사이클의 제본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