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203 건
"지인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받았는데 이게 혹시 불법인가요?" 지난해 초 서울 강북경찰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고시원에 살고 있다고 허위로 전입 신고를 하는 등 서류를 꾸며내 LH 전세자금을 불법 대출받고 LH 전세임대주택 부정 입주 자격을 얻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북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이한민 경위(52)는 직접 제보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브로커의 인적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일단 제보자로부터 들은 정보를 토대로 브로커 A씨에 대한 수배를 내렸다.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A씨가 검거돼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A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던 이 경위는 비슷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A씨는 브로커 B씨와 C씨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브로커들은 LH 전세자금 대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를 꾸몄다. 쪽방, 고시원 등에 3개월 이상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만나 조직적으로 보험 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서울 강동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소속 송기열 경위(42)는 지난해 12월 첩보 하나를 입수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뒤 실제로 접선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가로채는 일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송 경위는 또 다른 보험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첩보 내용을 확인하려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고수익 알바(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게시물에는 어떤 내용으로 일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텔레그램 아이디만 공개돼 있었다. 글을 올린 이들은 보험 사기 집단이었다. 범행 설계와 교통사고 합의·범죄수익금 배분 등을 담당하는 총책, 중간에서 범행을 지시하는 중간책, 단순 범행 가담자들을 감시하는 감시책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단순 범행 가담자들을 모집했다. 범행에는 렌터카를 사용했다. 한 차에
연제우 삼성1파출소 순경(26세·남)은 지난달 14일 오후 1시쯤 "가게의 물건이 없어졌는데 CCTV(폐쇄회로TV)를 보니 3명이 훔쳐갔다"는 신고를 받았다. 연 순경은 즉시 서울 강남 스타필드 코엑스몰로 출동했다. 강남경찰서 경찰관 10여명도 현장에 투입됐다. CCTV를 확인한 그는 그 3명이 유럽 한 국가를 상징하는 스카프를 착용한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생 때 스카우트 경험이 있는 연 순경은 이들이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여했던 대원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연 순경은 주변 잼버리 인솔자들에게 CCTV 영상을 보여주며 해당 영상에 나온 이들을 본 적 있냐고 수소문했다. 그러나 이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연 순경은 코엑스몰 내부를 뛰어다니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색을 이어갔다. 연 순경이 5번째로 만난 한 외국인 여성은 해당 잼버리 대원들이 현대백화점 10층의 한 매장을 방문했다고 진술했다. 연 순경은 이들이 찾은 매장을 방문한 뒤 동선을 추적해 현대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근무 중이든 퇴근길이든 제 직업은 경찰이잖아요." 지난달 17일 오후 8시20분쯤 서울 강북구 송중동 사거리. 서울경찰청 202경비단 62경비대 소속 안근석 경장(26)은 퇴근길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 뒤편에서 '쾅' 하는 충격음을 들었다. 안 경장의 차로를 향해 우회전하던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더니 안 경장의 뒤를 따르던 차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것이다. 안 경장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뛰어갔다. 태권도학원 통학버스인 노란 승합차의 뒤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 4명이 경상을 입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학원 차량 인솔 교사에게 112신고를 부탁한 안 경장은 곧바로 자신의 차에 몸을 실었다. 가해 차량 운전자가 음주 상태인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안 경장은 "근무 중이든 퇴근길이든 제 직업은 경찰이지 않으냐"며 "눈앞에서 범죄 피해를 목격했는데 신고만 하고 넘기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안 경장은 먼저 도주하던 흰색 엑센트 차량의 번호판을 되뇌
#. 지난 4월20일 20대 남성 건호씨(가명)가 자신의 친동생, 동생이 재직 중이던 회사의 대표 A씨와 함께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찾아왔다. 건호씨는 미추홀서 박지은 경장에게 "누군가 내 휴대폰으로 대출을 받아 피해를 봤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건호 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정확히 말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사실 건호씨는 초등학생 수준의 소통만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이다. 건호씨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박 경장은 대표 A씨가 건넨 통장 거래 내역서 1장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내역서에는 건호씨가 총 1억4000만원 상당의 대출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은 뒤 인출한 내역만 담겼다. 박 경장은 "본인이 어디에 감금됐고, 누구에게 어떻게 협박을 당했는지 등에 대해 전혀 진술을 못 했다"고 했다. 명확한 피해 진술을 받을 수 없었던 박 경장은 고소 또는 진정의 형태가 아닌 '첩보 수사'로 수사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증거 확보였다. 박 경장은 카드 결제 내역을 토대로 건호씨의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 기억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지난해 8월7일 밤 10시쯤. 부산 사상구의 한 도로에서 60대 남성 A씨가 그랜저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운전자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B씨로 사고 당일 A씨를 병원에 데려다줬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던 B씨는 자신의 전화번호 대신 한국인 지인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러나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면서 다른 번호가 전달됐다. B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부상 사상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이정실 경사(40)는 B씨의 신원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A씨는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난 건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 경사는 사건 당일 A씨의 동선을 추적하고 A씨가 치료받았던 병원을 찾아 차량 번호를 특정했다. 차량 조회를 통해 나온 전화번호로 B씨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해당 차량 소유자는 B씨가 아닌 인도네시아 국적의 또 다른 외국인 C씨였다. 이들은 서로 이름 정도만 알 뿐 잘 모르
지난달 15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전통시장. 식당에서 나온 한 남성의 손에 39㎝ 길이의 흉기가 들려있었다. 만취 상태의 남성은 음식값을 내지 않은 채 돌아가려다 주인과 실랑이가 붙자 식당에 있던 흉기를 들고 주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남성은 골목에 나와서도 욕설을 내뱉고 흉기를 휘두르며 시민들을 위협했다. 겁을 먹은 시민들은 남성을 피해 혼비백산으로 도망쳤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제기파출소 소속 황영현 경장(31)은 신고를 받고 곧장 현장으로 출동했다. 남성의 난동은 황 경장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황 경장과 동료들은 테이저건 대신 삼단봉을 사용하자고 미리 논의했다. 전통시장은 유동 인구가 많아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잽싸게 남성의 뒤로 이동한 이종범 팀장이 삼단봉으로 남성의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 순간 흉기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바로 그때 황 경장이 남성 등 위
"경찰에 접수된 피해신고 987건, 피해 전세보증금 800억원대, 피의자는 50여명. 경찰이 확인한 피해 보증금만 430억원(533세대)." '인천 건축왕'이라 불리는 남모씨(61) 일당의 전세사기는 현재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피해자가 발생한 전세사기 범죄로 꼽힌다. 지난 5월 2차 송치 이후에도 피해 신고가 이어지면서 전체 피해 규모는 더 커지는 중이다. 남씨 일당은 사회 초년생과 취약계층의 전재산인 전세보증금을 노렸다. 재기불능이라 여긴 피해자 4명은 극단선택을 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범죄수익추적수사팀(추적팀)은 남씨 일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기범들이 부당하게 거둔 자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사기 사건에서는 범죄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범죄수익금 환수가 어려워진다. 전세사기는 특히 형법상 사기죄 혐의로는 기소 전 범죄 수익금 몰수·추징 보전 조처가 불가능한 범죄다. 그동안의 전세사기 사건에서도 범죄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경찰에 붙잡힌 뒤에
"우리 딸이 흉기 들고 죽으려고 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달 17일 오후 11시쯤, 전북 군산경찰서 은파지구대에 다급한 112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20대 딸과 금전적인 문제로 다퉜는데 딸이 갑자기 "내가 죽는 걸 보여주겠다"면서 흉기를 들었다고 했다. 당황한 신고자는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안방에 들어가 급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은파지구대 소속 김유성 순경을 포함한 4명의 경찰관이 신고 접수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김 순경은 신고자인 어머니가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앳된 얼굴의 20대 딸 A씨가 방문 앞에 힘 없이 서 있었다. 그는 오른쪽 손에 흉기를 든 채로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김 순경은 당황했다. 그러나 최대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경찰관들이 다가갈수록 A씨는 방으로 뒷걸음질 치며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김 순경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건물 옥상 화단에 마약용 양귀비가 심겨 있는 것 같아요." 지난 6월21일 오후 3시22분쯤 서울 강북경찰서에 이 같은 신고가 접수됐다. 4층 건물 옥상에 마약용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다는 제보였다. 서울 삼양파출소 소속 김수환 경위(51)와 동료들은 제보자가 알려준 주소로 즉시 출동했다. 해당 건물에 도착했지만 옥상으로 가는 길은 철문으로 굳게 막혀있었다. 제보자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마약용 양귀비가 실제로 재배되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건물에 있던 사람들에게 옥상에 올라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옥상은 4층에서 거주하고 있는 건물 주인만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옥상을 드나들 수 있는 건물주나 건물주 주변인이 용의자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건물주는 당시 집에 없는 상태였다. 건물주가 집에 온다 한들 명확한 물증 없이 건물주가 옥상 출입에 동의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건물 밖에서 살펴봤지만 옥상 담이 높아 화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 경위는 건물에서 나와 망원경을 들고 인
"군포역 근처 화단에 남자가 쓰러져있어요." 지난 5월 어느날 경기 군포경찰서 군포지구대에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구름 없이 맑고 때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군포지구대 순찰4팀 소속 송상민 경장(28)이 신고를 받고 군포역 현장에 도착했을 때 70대 정도 되는 남성 A씨가 화단에 누워있었다. 송 경장은 일단 A씨를 일으켜 세워 벤치에 앉혔다. 술에 취한 상태인가 싶어 얼굴을 가까이 대봤지만 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송 경장이 A씨에게 인적사항 등을 묻자 간신히 대답은 했으나 점차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친구 아버지가 떠올랐다. 친구가 설명했던 아버지의 저혈당 증상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송 경장은 급히 인근 편의점으로 달려가 포도주스 한 병을 샀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송 경장은 영양에 관심이 많았고 액체의 당 흡수율이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송 경장은 포도주스를 A씨의 입에 넣어주고 A씨의 몸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A씨 의식이
"아침 출근길에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찾아주세요" 지난달 4일 오후 6시쯤.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구일지구대에 분실 신고가 한 건 접수됐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윤문규 구일지구대 경장은 이 사건이 단순 절도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 경장은 이 사건을 통해 중국인 불법체류자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심지어 휴대폰 절도범도 아니었다. 윤 경장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이날 윤 경장은 휴대폰 분실 신고를 받고 이종석 구일지구대 경위와 함께 구로시장 근처를 돌아다녔다. 휴대폰이 분실자의 노트북과 연동돼있었는데 구로시장 일대에 위치 표시가 들어왔다. 윤 경장은 구로시장 일대를 약 15분쯤 돌아다녔다. 우연히 칼국수 식당 앞을 지나는데 그곳에 서 있던 한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눈이 마주치면 아무렇지 지나가는 법인데 이 남성은 어쩐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윤 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