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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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산지에서 농산물을 싣고 올라온 화물차가 서울 가락시장에 도착하고도 짐을 내리지 못한다면 기다림의 비용은 누구 몫일까. 공사로 복잡해진 동선과 하차 지연은 농민과 유통 종사자의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1985년 문을 연 가락시장이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낡은 시설을 어떻게 고칠지가 아니라, 이곳에 시장을 계속 두는 것이 최선인지 묻는 목소리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최근 성명을 내고 정부에 가락시장 이전을 적극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40여년간 수도권 먹거리 공급과 전국 농산물 기준가격 형성의 중심이었지만, 도심의 협소한 부지와 교통 혼잡, 노후 시설로는 첨단 유통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농연은 현재 진행 중인 순환 재건축 방식의 시설현대화사업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장 영업을 유지하면서 구역별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방식인데, 공사가 길어지면서 출하 차량의 하차 대기시간과 임시시설 운영의 비효율,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사업은 2009년 시작됐다. 전체 사업비는 1조2769억원으로 늘었고 완료 목표도 2031년으로 미뤄졌다.
농촌진흥청은 논밭의 기상재해 위험을 30m 단위로 읽어낸다. 농작물 피해도 최대 4일 전 예측한다. 그렇다면 그 논밭에서 홀로 일하는 고령 농민의 위험은 누가 읽어내고 있을까. 폭염경보에도 농민은 밭으로 향한다. 집중호우에 논이 잠기면 위험을 무릅쓰고 물길을 살핀다. 날씨가 위험한 줄 몰라서가 아니다. 한 해 농사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20일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농가인구의 51. 3%가 65세 이상이다.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7. 7세, 1인 농가 비중은 27. 1%다. 농촌의 고령화는 농업재해 대책의 출발점이 된지 이미 오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여름철 폭우·폭염 피해 현황과 농업 부문 대응 과제)는 재난이 겹치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7월 경남 산청에 632. 6㎜, 충남 서산에 578. 3㎜의 비가 쏟아진 뒤 주요 주산지에는 평년보다 2. 8℃ 높은 폭염이 이어졌다. KREI는 폭우·폭염·병해충이 연쇄적으로 덮치는 복합재해에 맞춰 사후 복구보다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달걀 한 알의 값은 178원이었다. 하지만 그 알을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들여오는 데 1286원이 더 들었다. 달걀값보다 '모셔오는 값'이 7배 넘게 비싼 셈이다. 정부는 이를 미래의 공급 불안에 대비한 투자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떤 투자가 국민의 밥상을 더 오래 지킬 수 있을까. 농림축산식품부가 15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브라질산 신선란의 개당 현지 구매가격은 178원이다. 항공운임 959원, 관세 307원, 보관료 등 20원을 더한 최종 수입단가는 1464원. 30개들이 한 판으로 환산하면 4만3923원이다. 부대비용은 달걀 구매가격의 7. 2배였다. 정부가 들여온 브라질산은 112만개로 총비용이 약 16억원이다. 구매비 2억원을 뺀 14억원 가운데 항공운임 11억원은 국내 항공사에 지급됐고, 관세 등 약 3억원은 국고로 귀속됐다는 게 농식품부 설명이다. 모든 돈이 해외로 유출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용의 적정성을 따져볼 필요성까지 없어진 건 아니다. 올해 정부가 미국·태국·브라질·덴마크에서 수입한 신선란은 1억3324만개.
도매시장이 쉬어도 밭의 상추는 자라고, 오이는 익는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에 시장의 휴무일은 때로 가격을 좌우하는 변수다. 최근 수도권 핵심 도매시장들이 같은 날 문을 닫으면서, 정작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들은 출하할 곳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의 지나친 격차를 지적하며 농산물 유통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정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유통체계 개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거래의 확대가 아니라 도매시장의 휴업 확산이다. 서울 가락시장은 올해 5월을 제외하고 매달 한 차례씩 정기휴업 외에 추가로 쉬었다. 경기 구리시장도 10~12월 가락시장과 같은 날짜에 휴업하기로 했다. 인천과 경기 등 다른 시장에서도 동참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의 큰 시장들이 동시에 닫히면 농민에게 남는 선택지는 더욱 좁아진다. 가격도 민감하게 움직였다. 이달 10일 가락시장 시범휴업 이후 12일 상추 경락가격은 직전 주 평균보다 11.
농사에는 이름이 남지 않는 일이 많다. 모종을 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한 작물을 상자에 담는 손길이다. 그 손길이 여성의 것일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농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왔을까. 혹시 '농부의 아내'라는 말로 그 일을 다 설명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오는 15일은 정부가 정한 '여성농업인의 날'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3일 송미령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여성농업인을 '농업·농촌의 미래를 이끄는 핵심 경제주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일을 인정하고 공로를 기리는 것은 반갑다. 그렇다면 이제 그 찬사가 생활 속에서 어떤 변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봐야 할 차례다. 함께 밭을 일군다고 농사를 결정하는 권한까지 저절로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심고 어디에 팔지, 번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순간에도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농사일을 맡은 사람에게 농사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도 있는지 살피는 것. 그것이 여성농업인을 존중하는 출발점이다. 여성농업인이 공동경영주로 이름을 올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벌통은 '소상', 벌통 출입문은 '소문', 벌통을 열어 꿀벌의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은 '내검'이다. 양봉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벌을 기르는 기술에 앞서 낯선 용어부터 익혀야 한다. '벌통을 살펴보라'고 하면 될 일을 '소상을 내검하라'고 교육한다면, 양봉기술을 배우는 문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농촌진흥청이 한글날을 맞아 공개한 '양봉 용어 순화 목록'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농업인들이 양봉 현장에서 마주해 온 '언어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벌통과 출입문, 심지어 벌집과 일벌처럼 기본적인 시설과 생태를 설명하는 말까지 일상 언어와 동떨어져 있었다. 기술을 연구하고 농업인에게 보급하는 기관이 왜 이런 표현을 더 일찍, 더 폭넓게 정비하지 못했는지 돌아볼 대목이다. 농진청은 '누구나 알기 쉬운 우리말 표준 양봉 용어집' 개정판을 펴내고 31개 순화 용어를 공개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발표한 16개 용어에 현장과 학계 의견을 반영한 15개를 추가했다. 기존 용어의 명칭과 설명도 다시 검토했다.
땅에는 두 종류의 이름이 있다. 등기부에 적힌 이름과, 그 땅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는 사람의 이름이다. 두 이름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 사람에게 땅은 자기 소유가 아니어도 삶의 터전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지전수조사는 이 두 이름 사이의 거리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농지를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농사보다 땅값 상승을 기대하며 농지를 사들인 사람을 가려내고, 땅이 본래 쓰임을 되찾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를 잡는 일과 농사를 지키는 일이 저절로 함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소유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그 땅을 빌려 경작하던 사람까지 농사를 멈춰야 한다면, 단속의 부담은 엉뚱한 곳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조사는 땅의 주인을 확인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누가 실제 농사를 책임지는지, 조사 이후에도 그 사람이 계속 씨를 뿌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농지전수조사가 농지를 농업인에게 돌려준다는 목적을 이루려면 먼저 누구를 농업인으로 볼 것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이 30일 전격 해임됐다. 해임 사유로는 화환·조화 발송과 차량·운전자 사적 이용 등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장의 공금 사용에는 엄격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해임하는 결정이라면, 어떤 위반이 어느 정도 발생했고, 왜 해임이 필요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홍 사장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8월 취임했다. 당시 부여받은 임기는 3년이었다. 그는 국민의힘 출신으로 17·19·20·21대 국회의원을 지낸 4선 정치인이기도 하다. 국회 상임위를 대부분 농해수위 소속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농정통' 국회의원 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와 정치적 기반이 다른 전임 정부 인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만큼, 이번 결정은 감사 결과뿐 아니라 정권 교체 이후 공공기관 인사라는 맥락에서 농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주장처럼 정치적 이력만으로 해임을 정치적 축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판단의 핵심은 감사에서 확인한 행위와 처분의 수위다.
한 사람은 목장에서 소를 키웠고, 한 사람은 정부청사에서 농정(農政)을 만들었다. 한 사람은 평생 생산자의 편에서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 사람은 공직자로서 생산자와 산업, 소비자 사이에서 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왔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이제 한국 낙농산업의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마주 섰다. 이승호(67) 한국낙농육우협회장과 김경규(63) 낙농진흥회장이다. 그동안 한국 농업계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낯설었던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문제를 놓고 존재감을 드러낸 적도 흔치 않다. 먼저 링에 올라 있던 사람은 이승호 회장이다. 1960년생인 이 회장은 경기 여주에서 순덕목장을 경영해온 낙농인이다. 2004년 제12대 한국낙농육우협회장에 처음 선출된 뒤 13·14대를 연이어 맡았고, 3년간 자리를 비운 뒤 2016년 제16대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17·18대를 거쳐 지난해 제19대 회장에 다시 무투표 당선됐다. 현재 임기는 2028년 2월까지다.
미국에서 콩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다. 대두유는 식품과 바이오연료가 되고, 대두박은 축산사료가 된다. 대두가격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시장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농민이 낸 자금은 다시 품종개발과 시장개척에 투자된다. 중국의 구매량과 브라질의 작황, 미국의 에너지정책과 미·중 통상관계까지 맞물리면서 콩 한 알이 농업·에너지·금융·통상을 잇는 하나의 산업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미국 현지조사는 이 같은 미국 대두산업의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KREI는 지난 8월 미국 미주리와 시카고에서 대두농가를 비롯해 농식품정책연구소(FAPRI), 미주리대두협회, 바이오디젤 공장, Bayer, 미국대두협회(ASA), 미국대두수출위원회(USSEC) 등을 찾아 대두 생산·가공·수출과 바이오연료 산업을 조사했다. 출장 목적도 국제 대두 수급과 가격 변동이 국내 식품·사료·가공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한국의 대두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찾는 데 맞춰졌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농업과 에너지정책의 결합이다.
농지(農地)와 농업용수를 지켜온 한국농어촌공사가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햇빛소득마을 조성에 속도를 내면서 농지·저수지 등 농업기반을 관리해온 공사에도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어서다. 농어촌공사는 농지은행사업과 농업기반시설 종합관리 등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농어촌 발전에 기여하는 농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농업인의 땅과 물을 지키는 일이 공사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공사가 이제는 자신이 관리하는 저수지와 비축농지, 간척지 등을 재생에너지 생산공간으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농업생산기반을 지키는 기관이 동시에 발전 부지를 찾아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방향은 명확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5일 제40회 국무회의에서 '송전망 건설 수용성 제고 방안'을 보고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전력수요 증가에 맞춰 송전망을 신속히 구축하고, 송전선로 주변에는 '계통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발전수익을 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돼지를 살리기 위해 돼지를 죽여야 했다. 지난 7년간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싸워온 대한민국 양돈산업의 역설이다. 2019년 9월17일 오전 6시30분. 경기 파주의 한 양돈농장에서 폐사한 어미돼지 5마리를 검사한 결과 ASF 양성이 확인됐다. 국내 첫 발생이었다. 정부는 즉시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리고 전국 돼지농장과 도축장, 사료공장 등에 48시간 일시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발생농장과 농장주가 소유한 농장의 돼지 3950마리도 살처분됐다. 그날부터 대한민국 축산현장은 달라졌다. 농장 입구에는 생석회가 깔렸고, 도로에는 소독차량이 달렸다. 돼지가 이동하는 길에는 통제초소가 세워졌다. ASF는 사람에게 감염되지는 않지만 돼지에서는 치사율이 100%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당시 상용 백신이 없었던 만큼 방역당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감염된 돼지와 주변 위험축을 없애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첫 발생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파주 5건, 강화 5건, 김포 2건, 연천 2건 등 14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