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산식은 비공개 논란…'비공개 합의' 펀드 실명은 공시 파일에

국민연금이 최대 6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비공개 투자대상의 실명이 담긴 '숨김 시트'를 뒤늦게 지우고 공시 파일을 새로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 문건에 첨부된 엑셀 파일에 비공개 펀드의 실명·투자잔액·감사 지시사항 등으로 추정되는 내부 정보가 암호 없이 숨김 시트로만 가려져 있던 사실이 드러나자 숨김 시트를 지운 파일로 공시를 수정했다. 국내외 운용사와 거래하는 한국 대표 공적 연기금의 기초적인 정보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어서 자본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인프라·부동산 투자 현황 공시 파일의 숨김 시트에 비공개 자료가 남아 있다는 본지 보도 이후 파일을 교체했다. 숨김 시트가 들어 있던 공시는 인프라 투자의 경우 2023년 말~2025년 말분, 부동산 투자는 2023년 말과 2024년 말분이며 숨김 시트는 모두 25개였다.
인프라 투자 공시 엑셀 파일의 숨김 시트에서는 53조9551억원, 부동산 투자 공시에서는 11조1334억원 규모의 투자대상이 비공개 항목인데도 숨김 해제 기능만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모두 합하면 65조885억원 규모 펀드·프로젝트의 실명과 투자잔액으로 추정되는 항목이 노출된 셈이다.
자본시장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전략적 모호성을 앞세워 비공개 기조를 강화하던 행보와 정면충돌하는 사태라는 반응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국내주식 목표 비중 상향을 결정한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법에 따라 4년간 공개하지 않기로 했고 전략적 환헤지 한도 산식도 비공개로 돌렸다. 올해는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민연금의 정보공개 수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이 미국 전쟁부의 조달사업 참여 금지 명단인 CMC(중국군사기업) 명단에 오른 중지이노라이트의 홍콩 증시 IPO(기업공개)에 투자해 지정학적 위험 논란이 일었을 때도 운용사와의 비공개 조건 계약 등을 이유로 세부 정보 공개가 어렵다고 국회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공시문서에 운용사와 합의한 비공개 정보를 실은 것은 법적으로 계약 내용과 상충될 소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 대한 해외 기관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 공공기관의 정보 관리 수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 숨김 시트에는 블랙스톤,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전북 전주에 사무소를 열었거나 열 예정인 글로벌 자산운용사 계열 펀드의 실명도 대거 포함돼 있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있는 전주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인 자산운용 특화 금융중심지(제3금융중심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기관 차원의 내부 통제 시스템 점검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민연금의 각종 비공개 전략을 거론하며 "국민연금의 출자 정보가 실제 큰일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공개를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면서도 "노출된 것이 중요 정보라면 기관 차원에서 공식적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2,442명 읽는 중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어 세부적인 것은 일일이 다 공시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운영이 불투명해지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내부 통제와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숨김 시트 노출에 대해 "내부에서 점검을 안 한 것"이라며 "내부 통제 시스템이 부실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