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토요일 저녁. 아내와 아들과 함께 처형 댁에 놀러갔다. 혼자 크는 4살 아들 녀석은 9살, 7살 제 사촌형들이랑 오랜만에 만나서 아주 신이 났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 사내 녀석 셋이 모였는데 안 싸울 리가 없었다. 특히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아들 녀석은 7살짜리 준한이가 절 봐주는 줄도 모르고 자꾸 까불었다. 이 놈 나름대론 눈치는 있다. 제법 큰 티가 나는 9살짜리 서준이에겐 절대 안 까분다. 저 보기에 만만한 준한이에게만 그런다.
준한이는 처음엔 상대도 안 되는 어린 동생이라 봐주다가도 슬슬 짜증이 나면 아들 놈에게 가끔 응징(?)을 가하기도 한다. 그럴 때 옆에선 처형이 동생인데 봐주라고 한다.
한편 준한이는 제 형 서준이한텐 잘 대든다. 하지만 서준이는 얄짤없다. 가차없는 응징이다. 준한이가 반격하면 더 얻어터진다. 그렇게 싸우고선 준한이는 형한테 대들었다고 야단맞았다. 아, 둘째의 비애다. 안방 한 쪽 구석에서 손들고 벌서는 준한이가 좀 안쓰러웠다. 아들놈 때문에 벌 서는 것 같기도 하다.
안방에서 손들고 벌 서는 준한이게 가서 "엄마 오나 망 봐줄 테니 손 내리고 있어" 그랬다. 오호~ 그래도 사내놈이라고 안 내린단다. 위로나 한 마디 건네고 안방을 나왔다. "준한이 억울하지? 동생은 봐줘야 하고 형한텐 못 대들고."
한 5분후 벌이 풀렸다. 안방을 나온 준한이는 조용히 와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자기가 만든 블록장난감도 보여주며 괜히 친한 척이다. 제 맘 알아준 게 좋았나 보다.
#.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한다는 주제를 내건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나꼼수) 출연진의 야외 특별공연이 열렸다. 여기에 3만여명(경찰 추산 1만6000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자발적 후불제로 모았던 공연수익금도 3억원이나 될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나꼼수의 인기 탓도 있겠지만 한·미 FTA에 반대하는 최근 민심이 상당하다는 정황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사실 2007년 체결 이후 한·미 FTA에 대해선 정치이슈가 있던 일시적 경우를 제외하곤 찬성여론이 대체로 높은 편이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보니 나온 결과겠다. 그러나 지난달 여당이 비공개로 비준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찬반이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해질 정도로까지 반대의견비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이렇게까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진 게 여당의 처리방식이나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한·미 FTA에 포함된 몇 가지 독소조항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 2009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화된 양극화로 사람들은 더 불안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아니면 직업을 잃을까 불안하다. 아이 낳아 키우기도, 공부시키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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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불안하고 힘든 상황에서 세계최강국 미국과 FTA는 또 하나의 불안 요소다. 우리 경제 체제가 완전히 미국식으로 바뀌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 다국적 기업의 위세 앞에 약값이 오르고 병원 가기 힘들어질까 두렵다.
전기세 수도세 교통비가 무지막지하게 오를까 무섭다. 내 밥줄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수출이 늘어난다지만 대기업이 잘 되면 그 효과가 서민에게 간다는 이른바 '낙수 이론'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런저런 불안과 걱정을 정부 여당은 그저 '괴담'이라고 치부할 뿐이다. 이번 한·미 FTA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진행됐는지, 실제로 도움이 될 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자.
적어도 국민들에겐 이런저런 불안과 걱정에 대해 정부의 명확한 설명을 듣고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그게 바로 정부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불안한 국민 마음도 어루만지지 못하는 정부가 국민을 잘 살게 해줄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