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포스코 LG화학 코오롱 등 성과…부품·소재 무역흑자 12년새 33배
나일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나일론 양말'이다. 질기지만 천연섬유에 비해 보온성이 떨어져 항상 발이 시렸다. 한 때는 신소재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내 '저급', '가짜'의 대명사가 돼 '나이롱 신사', '나이롱 박수'라는 말까지 생겼다. 지금은 의류용 나일론은 더 가격이 싼 폴리에스터에 자리를 내어주고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의류는 나일론의 사용처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자동차와 전자기기 부품 중 우리가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상당수가 바로 미국 듀폰이 1938년 개발한 '나일론66'을 가공한 것들이다. 최근에는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탄소섬유나 유리섬유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일론이 처음 세상에 나온 뒤 75년이 흐른 2013년, 이를 대체할 물질을 한국 기업이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다. 지난 4일효성(158,300원 ▲2,700 +1.74%)이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폴리케톤'이 그것이다. 나일론에 비해 강도나 내화학성 등 산업용 플라스틱으로 갖춰야 하는 성질이 훨씬 우수한 제품으로, 1980년부터 독일이나 일본 업체들도 개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폴리케톤 개발이 '한국 소재 산업 역사를 새로 쓴 쾌거'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폴리케톤이 공략할 전세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60조원이며, 매년 5%씩 성장하고 있다. 효성은 이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것이 목표다.
◇ '트윕강'과 '메탈로센'…= 국내 소재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 기업이 나오면서 산업계의 숙원인 '소재강국' 달성도 가시화됐다. 일부는 독자기술로 전통적 소재강국인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포스코(311,000원 ▲4,500 +1.47%)는 독자기술로 개발한 '트윕(TWIP)강'을 피아트에 납품하고 있다. 트윕강은 철에 망간, 알루미늄 등을 일정 비율 섞어 만든 차세대 강판으로, 일반 강판보다 3~4배 강하면서도 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동차에 사용하면 무게를 기존 강판 대비 28%까지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1990년대 트윕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상용화하지 못했다. 이후 설비를 개선을 통해 원가를 줄일 수 있었고, 2010년12월 양산에 들어갔다.

LG화학(262,500원 ▲5,500 +2.14%)은 2010년 세계 최초로 3D TV용 광학필름인 FPR(필름패턴 편광 안경방식)를 개발했다. 이전까지 광학필름분야는 니토덴코, 스미토모 등 일본업체들이 주도하고 한국이 추격하는 양상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광학필름분야에서 LG화학은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85%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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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LG화학은 90년대 말 국내 처음으로 차세대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을 개발했다. 또 2008년에는 이 기술을 활용해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함께 가진 '엘라스토머' 제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선발업체인 미국 다우케미칼이 LG화학에 대해 자사제품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LG화학은 메탈로센 촉매를 활용해 만든 고부가 폴리올레핀 제품에서 연간 4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코오롱글로텍은 지난해 그동안 염색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폴리프로필렌 염색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퓨어론'이라는 상표를 붙여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폴리프로필렌은 물에 젖어도 강도가 변하지 않고 강산, 강알칼리 등 약품에도 강하지만 색을 입힐 수 없어 기저귀나 고급부직포 등으로만 사용됐다. 앞으로는 스포츠웨어, 아웃도어의류, 수영복 등 다양한 패션제품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또 나일론 원사에 구리 파우더를 입힌 구리사(絲)를 개발해 역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구리를 가는 실로 만들어 다른 원사와 함께 꼬는 방식이 아니라, 원사 구멍을 내고 구리 파우더를 입히는 방식은 세계 최초다. 은을 이용한 일본의 은(銀)사섬유에 비해 가격은 7분의 1 수준이면서 항균, 소취, 등의 기능은 유사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세계 5위 부품소재 수출 국가 등극=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부품까지 포함한 부품·소재 무역수지 흑자는 크게 불어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부품·소재 무역수지 흑자는 2001년 27억달러에서 지난해 910억달러로 33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산업의 무역수지는 93억달러에서 285억달러로 3배 느는 데 그쳤다.
부품·소재 수출액은 2001년 세계 10위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5위로 뛰어올랐다. 고질적인 부품·소재 산업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2001년 28.1%에서 지난해 23.0로 줄었다.
또 세계시장 점유율이 5위 이내이면서 세계시장 규모가 5000만달러 이상인 제품을 대상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정하는 '세계일류상품' 가운데 소재 제품은 2001년 4개에서 지난해 9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런 성공에는 정부가 체계적인 지원책을 펼쳐온 게 도움이 됐다. 정부는 2003년 부품·소재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2010년 10대 핵심소재를 선정해 개발을 지원하는 '월드프리미엄매터리얼(WPM)' 사업을 진행했다.
업체들도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쏟아 부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발표한 ‘연구개발활동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연구개발비가 2007년 21조3351억원에서 2011년 33조4254억원으로 4년만에 56.6%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계도 있다. 효성의 폴리케톤 개발은 예외지만, 대부분의 국내 업체가 개발한 소재 제품의 용도가 폭넓지 않고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개발을 하더라도 충분한 시장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제품의 생명도 짧을 수밖에 없다.
김병철 한양대 유기나노공학과 교수는 "소재의 특성상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제품일수록 생산 설비를 대규모로 만들 수 있고, 그만큼 가격이 낮아져 경쟁력이 생긴다"며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기업은 기술 개발 단계에서 용도까지 포함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