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1 노사의 '아름다운' 시무식

[기자수첩] E1 노사의 '아름다운' 시무식

류지민 기자
2014.01.02 17:26

국내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노사관계다. 그 중 매년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을 둘러싼 협상과정은 노사관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까지 국내에서 총 63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다.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 46만일에 손실액만 3조원이 넘었다.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차 노조의 경우 지난해 10차례의 부분파업을 벌였고, 이에 따라 차량 5만191대를 만들지 못해 총 1조22억원의 생산차질액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구나 올해는 통상임금 판결의 여파로 대대적인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돼 노사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덜 주려는 사용자와 더 받으려는 노동자의 상반된 입장은 어찌 보면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2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는 이 같은 명제를 무색케 하는 훈훈한 풍경이 펼쳐졌다.

"당 노동조합은 상호신뢰와 협력의 기본 정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2014년도 임금에 관한 모든 사항을 회사에 일임하고자 합니다."

E1 노조가 이날 갑오년 새해 시무식에서 회사 측에 전달한 위임장의 일부다. 매년 시무식에서 '임금협상 무교섭 타결'을 발표하는 것은 E1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96년 이후 벌써 19년째다. '임금에 관한 전권을 사측에 맡긴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20년 가까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사 간의 두터운 신뢰다.

매일 오전 9시가 되면 E1 사무실에선 직원들이 보낸 업무와 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이 음악과 함께 울려 퍼진다. 방송 이후 팀원들이 모두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티타임'이 이어진다. 구자용 회장은 직원들과 사내 e메일을 수시로 주고받으며 소통에 동참한다.

인천·대산·여수 등 지방에 위치한 3곳의 LPG 수입기지에서도 소통을 위한 노력은 활발하게 이뤄진다. 의무사항인 노경협의회 외에도 경영현황 설명회, 노경간담회 등을 통해 경영 내용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노사가 얼굴을 맞대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갖는다. 소모적인 교섭관행을 탈피하고 임금협상에 쏟을 에너지를 경영활동에 집중해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인 셈이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다. 하지만 파업이나 분규보다 대화를 통한 협의가 노사 쌍방에 모두 득이 된다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조직은 힘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피터 드러커의 명언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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