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 1일 오전8시50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7년 만에 재개되는 '한일(韓日)재계회의' 회의장으로 양국의 대표 기업인들의 속속 모였다.
삼성에서는 당시 삼성전자 대외담당 강호문 부회장이 대표로 나왔다. 기자가 바로 따라 붙었다. "잠시 후에 인사 발표가 있는데, 한 말씀만 해 주시죠" 강 부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저야 모르죠. 미래전략실에서 알겠죠."
#2. 10분 뒤 서울 서초동 삼성본사. 사장단 인사 내용이 발표됐다. 리스트에 강 부회장은 없었다. 대신 그가 맡던 대외담당 자리에 박상진 전 삼성SDI 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은 "퇴임하는 분들에 대해선 따로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룹 내 서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강 부회장이 실제 자신의 거취를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그가 미리 인지를 했든 아니든 이 장면들에서 삼성의 인사 스타일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바로 '철통 보안'이다.
삼성은 그동안에도 매년 인사철마다 철저히 입단속을 해왔다. 인사 직전까지도 삼성 수뇌부는 늘 '무거운 입'을 자랑하곤 한다.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아마 사장들도 직전까지 자신의 앞을 모를 것"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다. 인사 전에 언론에서도 이런저런 예측기사를 내놓지만 결과적으로 '오보'인 경우가 허다한 이유다.
보안을 철저히 지키고 시선을 집중시켜 인사 뚜껑을 열 경우, 조직에 전달되는 메시지가 뚜렷하고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인사 진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외부의 개입이나 잡음도 미연에 막을 수 있다는 포석도 있다는 분석이다. 오래 누적된 학습효과로 인사철이라도 구성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 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날 강 부회장은 사실상 오전 9시로 임무가 종료됐다. 예정된 행사는 정오까지. 3시간동안 남아있기가 불편할 수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가는 '유종의 미'를 몸소 보여준 셈이다.
일정을 모두 마친 강 부회장은 지인들에게 "39년의 삼성 생활을 무사히 끝마치고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또 새로운 삶을 개척합니다"라고 '쿨한' 메시지를 보내며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도 인사 결과에 대처하는 삼성맨들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독자들의 PICK!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은 불변의 진리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다른 조직들도 세계 일류로 우뚝 선 기업의 인사 스타일을 눈여겨 볼만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