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40만원' 호텔 장기숙박 누가 쓰나 봤더니...

'월 340만원' 호텔 장기숙박 누가 쓰나 봤더니...

유승목 기자
2021.06.17 16:10

워라밸 찾는 2030, 인테리어·이사 등으로 특급호텔 장박 수요↑

/사진=롯데호텔
/사진=롯데호텔

직장인 이모씨(30·여)는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재택근무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최근엔 '재텔근무'를 했다. 집 대신 특급호텔에 머물며 일하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제주도로 떠난 것도 아니다. 월세(?)를 내고 '서울 워케이션(Work+Vacation)'을 즐겼단 설명이다.

매일 아침 조식을 먹은 이씨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영을 즐겼다. 일을 마치면 광화문 인근을 산책하거나 친구를 만나 맛집을 다녔다. 여력이 되면 호텔 피트니스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씨는 "한 달 월세 낸다 생각하니 어렵지 않겠단 싶었다"며 "호캉스하며 일을 하는 셈이니 업무 능률도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에 340만원. 동네 부동산에 적힌 고급 아파트·오피스텔 주인이 내놓은 월세 가격이 아니다. 5성급 특급호텔에서 한 달 동안 마음껏 놀고 먹는 데 드는 비용이다. 언뜻 보면 입이 벌어질 만큼 비싸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떠올리면 못 갈 것도 없어 보인다. 호캉스(호텔+바캉스)에 익숙한 2030 MZ(밀레니얼+제트) 세대들이 노트북과 짐을 챙겨 특급호텔 로비로 향하는 이유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일상을 바꾸면서 최근 '한 달 살기'가 각광받고 있다. 기업들이 재택근무와 리프레시 휴가를 장려하면서 제주나 강릉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장박(장기투숙) 시장이 인기를 끄는 것이다. 호텔을 내 집처럼 삼고 일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단 장점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MZ세대가 선호하고 있다.

하루 11만원에 호캉스 '월세보다 싸'
롯데호텔 서울. /사진=독자 제공
롯데호텔 서울. /사진=독자 제공

한 달 살기 자체가 생소한 개념은 아니지만 업계 안팎에선 다소 놀랍단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살기 상품은 제주도 등 휴양지 숙박시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머무는 것 외에 서울 특급호텔에서 장박 투숙객은 찾기 어려웠다.

국내에 '도심형 한달살기' 호캉스를 들여온 곳은 롯데호텔 서울이다. 지난 3월 '원스 인 어 라이프' 패키지를 첫 출시하면서다. 호텔업에 잔뼈가 굵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장박 상품을 눈 여겨 보면서 아이디어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코로나19로 해외 비즈니스·관광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가 끊기며 활로를 모색하던 롯데호텔 서울이 해당 상품을 꺼내들었다.

14박 상품은 250만원, 30박 상품은 340만원부터인데, 하루에 11~18만원 가량으로 30만원 안팎을 오가는 특급호텔에 묵을 수 있는 것이다. 금액을 추가하면 매일 아침을 뷔페에서 먹을 수 있다. 객실 청소와 속옷·양말 등의 세탁 서비스는 물론 서울 한복판에 주차도 무료로 가능하다. 피트니스와 수영장에 전자레인지 등이 갖춰진 전용 라운지도 매일 이용할 수 있다. 기간을 길게 늘린 가성비 호캉스인 셈이다.

롯데호텔에 따르면 해당 상품은 출시 첫 주에만 20건 이상 판매됐다. 이후 롯데호텔은 전국 16개 체인 영업장으로 상품을 확대했는데, 현재까지 2000실이 예약됐다. 2주 상품이라고 쳐도 3만실에 육박하는 판매효과를 얻은 것이다. 제주를 제외하고 코로나 여파로 OCC(객실점유율)가 뚝 떨어진 상황에서 숨통을 텄다. 시그니엘 서울에선 무려 1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5건이 넘게 예약됐다.

MZ세대 '워케이션'에 딱…5060도 관심
/사진=롯데호텔
/사진=롯데호텔

업계에선 호캉스에 익숙한 젊은 직장인을 겨냥하며 효과를 봤단 분석이다. 재택근무가 확산하고 해외여행이 막힌 상황에서 사람으로 붐비는 제주 등을 찾느니 서울에서 '워케이션'을 노리는 젊은 직장인들을 제대로 공략했단 것이다. 게다가 2030 젊은세대 뿐 아니라 이사나 인테리어 등으로 급하게 머물 곳이 필요한 사람들은 물론 5060 실버세대의 문의도 늘고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호텔에 익숙한 2030 세대를 노려 명동·홍대·강남에 있는 L7호텔에서도 판매했는데, 이용객들이 모두 투숙기한을 열흘 이상 연장할 만큼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기에 글래드 호텔과 여의도 켄싱턴 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라이즈호텔 등도 '서울에서 한 달 살기' 등의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에서 치솟는 월세를 고려하면 깨끗한 객실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단 점에서 200~3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 오히려 싸게 먹히는 편"이라며 "내국인 장기투숙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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