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 유행에 그쳤던 3D TV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8K(7680×4320) TV가 역신장했다. 2017년 최초 제품이 시장에 나왔던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8K는 현존하는 디스플레이 해상도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이론상 기존 4K UHD(3840×2160)와 비교해 4배 선명하다. 업계에서는 대화면에 이은 새로운 트랜드로 주목받아왔다.
29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 세계 시장에 출하된 8K TV는 17만7800대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가량 줄었다. 8K TV 출하량은 지난해 3분기 들어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말 할인이 집중되는 4분기에도 출하량에 10만대에 미치지 못했다. 작년 4분기 출하량은 9만5000대 수준으로 전년 대비 30%나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감소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옴디아가 제시한 상반기 8K TV 출하량은 15만1900대다. 지난해 상반기와 견줘 18.6% 가량 적은 규모다. 옴디아는 보고서에서 "8K TV의 시장 비중이 정점에 이르렀다"면서 "이 현상은 출하량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체 TV 시장의 침체가 원인이 아니다"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8K TV가 과거 대중화에 실패했던 3D TV와 유사한 출하량 동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D는 2010년 당시 TV 업계에서 단연 최대 화두였다. 영화 아바타가 인기를 끌면서 기업들은 3D를 새 시장 창출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예상과 현실은 달랐다. 소비자들은 영화관과 달리 집에서는 편안한 시청경험을 원했다.
업계 관계자는 "3D TV나 커브드(곡면) TV 등은 과거 시장에서 인기를 끌다가 출시 3년 이후부터 출하량이 급격히 떨어지며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다"면서 "8K TV도 통계상으로는 이 기술들의 추세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8K TV는 2017년 9월 일본 샤프가 처음으로 출시했다. 2018년에는 시장 1위인 삼성전자가, 2019년에는 주요 업체 대부분이 제품을 선보이면서 8K가 업계의 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뒀던 2020년 4분기에는 8K TV 출하량이 분기 최대치인 13만5800대를 기록하며 꿈의 해상도로 불렸던 8K 시장이 본격 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8K TV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전용 콘텐츠 부족을 꼽는다. 8K TV가 기존 4K 제품과 비교해 4배 더 선명한 화면을 보여줘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영상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TV 제조사들이 화면 해상도를 높이는 업스케일링 기술을 탑재하고 있지만 또렷한 체감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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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송 환경을 둘러보면 8K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4K UHD 조차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정책방안에 따르면 수도권과 광역시 중심으로 구축된 지상파 UHD 방송망은 오는 2023년에 들어서야 전국 시·군 지역 확대를 시작한다.
8K 부진 이유를 TV 기술전환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4K TV가 도입됐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TV 시장은 LCD(액정표시장치) 위주였다. 같은 LCD 기반 제품 사이에서 구매를 고민할때는 해상도가 TV 선택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였지만, 최근 들어 소비자들은 명암비와 색재현율, 응답속도, 눈건강 등 다양한 요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조사들도 콘텐츠 부족과 구매 설득력 감소 속에서 8K를 강조하는 경향이 옅어지고 있다. 옴디아에 따르면 8K TV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저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직전연도보다 18% 적은 양을 출하했다. LG전자는 지난해 8K를 제품군에 추가했지만 OLED 중심의 마케팅을 벌였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8K를 제대로 어필하기 어려운 환경이란 분위기"라며 "향후 8K 시장이 점차 확대될 수 있겠지만 대중화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