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기고]

배임죄 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기고]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2026.01.29 05:50

2014년에서 2023년까지 10년간 한국의 배임죄 기소 인원은 연평균 965명으로 일본(31명)의 31배나 된다. 국내 기업인들이 일본보다 31배나 많은 배임 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한국의 배임죄 적용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양국 기업 문화와 법치 수준을 고려하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설득력이 더 크다.

한국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가하면 성립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세 가지 요건 모두가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우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독일 형법은 배임죄 적용 대상을 '법률이나 관청의 위임, 법률행위 또는 신임관계'가 있는 자로 명확히 한정한다. 일본도 형법에서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규정하되 타인의 사무를 '재산적 사무'에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제한이 없어 사실상 모든 기업 구성원이 배임죄의 수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임무 위배' 기준도 모호하다. 기업인들의 경영 판단을 법원이 사후적으로 판단해 법원의 재량에 의해 처벌 여부가 결정될 소지가 크다. 이 때문에 성공이 보장된 투자나 실패 리스크가 없는 투자만 배임죄 처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독일은 배임죄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고 일본도 회사법에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명확한 고의성을 요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위험 가능성'까지 처벌의 여지를 열어둔 '재산상의 손해' 요건이다. 과거 모기업이 특정 계열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손해 발생 가능성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면 모든 경영상 리스크를 범죄화하는 것과 다름없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무너지게 된다.

2024년 중 횡령·배임죄 무죄율은 7% 안팎으로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 3.1%의 2배가 넘는다. 유죄를 확신할 수 없는 사건으로 기소돼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도 경영자들은 수년간 막대한 소송비용을 부담하며 재판에 시달려야 한다. 재판 기간 동안 경영에 온전히 전념하기가 어려운 것도 기업으로서는 큰 손실이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을 우선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처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을 요건으로 추가해 목적범화하고 현실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만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처럼 배임죄 적용 대상을 법률상 위임관계가 명확히 규정된 자로 한정하고 미수범에 대한 처벌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해 경영자가 의사결정 당시의 결정이 합리적이었다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타인의 사무' '임무 위배' '재산상 손해'라는 핵심 요건이 모두 불명확한 상황에서 기업인들은 모든 투자 결정으로 인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위험을 감수한 경영 판단을 배임죄로 기소하는 행태가 지속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은 계속해서 꺼져갈 수밖에 없다. 배임죄 전면 개편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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