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방문판매도 다단계판매?

[광화문]방문판매도 다단계판매?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0.10.21 07:55

중국 춘추시대에 술을 만들어 파는 어느 주막집 주인이 있었다. 그는 술을 정말 맛있게 잘 만들었다. 그런데도 장사가 통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주막집 주인은 마을 어른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어른은 이렇게 물었다. “주막집에서 키우는 개가 사나운가?” 주막집 주인은 “그렇다”고 했다. 설명이 이어졌다. “개가 사나워 정작 술을 사러 오는 손님까지도 다 쫓아내니 장사가 안 되는 거지.”

한비자에 나오는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성어의 내용이다. 도둑 지키자고 키우던 개로 인해 손님 발길까지 끊어졌다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정부가 시장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감독정책을 마련할 때, 해당 산업 자체가 위축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화장품을 비롯한 방문판매업계에선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방문판매법' 개정을 위한 절충안이 논란이다. 공정위 안에선 기존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 외에도 '후원방문판매'라는 업종을 신설, 기존 다단계판매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과거 '제이유(JU)'와 같은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일부 불법업체를 강력하게 근절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명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판매원 단계가 3단계 이상이고 후원수당 지급단계가 1단계 이내인 업체를 후원방문판매업체로 규정하는 현재 안대로라면, 화장품업계를 비롯해 대부분 방판업체들이 후원방문판매업체로 포함돼 다단계업체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공정위 안 대로 법이 개정된다면 방문판매업 자체가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큰 돈이 필요한 `공제조합 의무가입’이나 방문판매업자의 수입을 위축시킬 수 있는 `후원수당 35%' 제한 등은 방문판매업 자체의 존립을 흔들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의 가장 큰 차이는 후원수당을 수령하는 대상이 1단계뿐이냐, 그 이상이냐의 문제다. 방문판매는 A가 직접 '리쿠르팅(고용)'한 B에게만 수당을 받지만, 다단계판매에선 A가 B뿐만 아니라 B가 리쿠르팅한 C나 이후 단계별로 연결되는 D E F 등에게도 모두 수당을 받는 구조다.

그런데도 다단계와 마찬가지로 '3달치 매출의 최대 40%(최소 1억원 이상)를 예치하고 수수료도 꼬박꼬박 납부해야 하는' 공제조합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면 개별 방문판매업자들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또 대부분 방문판매업자는 직접 물건을 판매해 얻는 수입이 전체 수입의 70∼80% 이상이고 후원수당은 20∼30% 선에 불과하다. 반대로 다단계는 후원수당이 수입의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방문판매업의 후원수당비율을 다단계처럼 최대 35%로 제한하면 월평균 150∼200만원 선으로 추산되는 개별 방문판매업자들의 수입이 더 줄어들게 된다. 또 다단계처럼 판매물품의 가격을 최고 130만원으로 제한할 경우, 자동차나 정수기 등 고가물품은 경우에 따라 방문판매를 추진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공정위는 이미 2007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등 대규모 방판업체들에게 대해 무등록 다단계 영업 혐의로 시정명령 조치했으나, 해당 업체들은 결국 행정소송을 통해 혐의를 모두 벗었던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2만 8700여개 업체에서 약 80만명이 종사하는 방문판매업을 굳이 모두 74개밖에 안 되는 다단계판매업체 기준에 맞춰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쁜 업체들 벌 줄 조항이 영 없다면 몰라도 말이다.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불법업체 감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도록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절엔 특히 그렇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