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찍지 마세요. 연예인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초상권이 있거든요."
지난 주말 '해외명품대전'이 열린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선 이른 아침부터 구름떼처럼 몰려든 고객들과 이를 촬영하던 취재진 간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신세계를 비롯한 국내 주요 백화점들은 일 년에 두 번 이월상품 위주로 대대적인 명품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브랜드별 할인율이 최고 70~80%에 달하다 보니 행사때마다 엄청난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이 모습을 담기 위한 취재열기도 뜨겁다.
이번에도 백화점 개점 전부터 수 백 명의 고객들이 로비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이 열리기 무섭게 행사장을 장악했다. 일부 행사장은 과도한 혼잡을 우려해 줄을 세우고 입장을 통제했는데, 대기 줄이 복도를 따라 한 층 전체를 메울 정도였다. 문제는 이 모습을 쉴 새 없이 촬영하는 취재진과 이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고객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일부 고객들은 취재진에게 직접 촬영 중단을 요구하거나 현장에 나와 있던 백화점 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는 그 자리에서 백화점 고객센터로 전화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한 여성 고객은 "돈 쓰러 와서 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게 만드느냐"며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당장 카메라를 치우라"고 항의했다.
갑자기 들이대는 취재용 카메라가 편하게 느껴질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민망하거나 겸연쩍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같은 보편적인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일부 고객들의 반응이 예민하게 느껴진 것은 취재 현장이 명품과 관련된 곳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만원짜리 균일가 행사장이었어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을까.
지하철에서 '샤넬백'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명품사랑'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자신이 '명품족'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명품에 대한 정체성은 꽁꽁 감추기 일쑤다.
불황에도 여유롭게 명품 쇼핑하는 모습과 떨이에 가까운 할인행사장에서라도 명품을 사고 싶어하는 모습. 이 둘 중 어느쪽이든 들키기 싫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명품은 좋지만 명품을 좋아하는 본인의 모습은 떳떳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