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봉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 "신진 디자이너, 해외진출 꿈 잃지 말라"

지난달 서울에서 국제 패션 수주 전시회인 '패션코드 2014'가 열렸다. 여기에는 고태용· 곽현주 등 국내 중진 디자이너는 물론 계한희·황재근 같은 신진 디자이너들까지 122개 브랜드가 출동했다. 홍콩 하비니콜스 백화점과 편집숍 레끌레르 등 120명의 해외 바이어가 참석해 분위기를 띄웠다.
사실 해외 바이어와의 실질적인 계약 성사는 패션쇼보다 이런 전시회에서 90% 이상 이뤄진다. 신진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바이어를 만나 옷을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이런 전시회다.
필자는 특히 이번 전시회가 '패션 코리아'를 만드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패션 전시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이 국내외 바이어들과 마음껏 만날 수 있도록 정부와 패션업계가 공동 기획한 '패션코드 2014'는 단비 같은 존재다.
필자의 짧지 않은 디자인 인생에서도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는 바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였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릴 때 필자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상황에서 "비즈니스로 돈을 벌자"는 결심을 하고,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필자는 파리 전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머 어마한 규모에 놀란 한편 '이상봉'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바이어에게 알릴지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필자의 부스 간판에 난데없는 인공기가 달려 있어 직접 사무국에 달려가 교체를 요청할 정도로 당시 '패션 코리아'의 존재는 미미했다.
그러나 함께 전시회에 참가한 우영미· 박춘무 디자이너 등과 필자는 의기투합했다. 필자는 당시 박춘무 디자이너가 주문을 적은 오더 기록장을 놓고 '비 내리는 오더장'이라고 부른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전시회에서는 통상 개인숍에서 옷을 주문하기 때문에 대부분 1장씩 오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더 기록장에는 숫자 1이 가득해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필자는 그 첫 파리 전시회에서 1장씩 1000장이 넘는 주문을 받았다. 비 내리는 오더장이라며 함께 웃었던 우영미·박춘무 디자이너는 지금은 파리 남성복 컬렉션과 뉴욕 컬렉션에서 주목받는 글로벌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이후 필자는 파리 뿐 아니라 독일과 뉴욕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도 참가해 더 많은 해외 경험을 쌓았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 때문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해 보이는 해외 전시회 참가가 지금의 '이상봉' 브랜드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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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자이너가 만든 고급 기성복을 구매하는 바이어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런 유통 구조 탓에 해외 진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젊은 디자이너들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패션 수주 전시회는 외국 바이어들을 직접 만나 비즈니스를 하며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패션 시장이다.
필자는 지금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해외 수주 전시회에 직접 나가 스스로 옷을 팔아보라고. 한국에서 열리는 패션 수주 전시회에도 더 큰 관심을 가지라고. 필자가 파리 전시회로 떠날 때만해도 따지고 보면 한국에는 제대로 된 패션 전시회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패션 전시회가 한국에서도 꾸준히 열려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 젊은 디자이너들은 해외나 한국 가릴 것 없이 수주 전시회에 더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근사한 컬렉션 데뷔를 꿈꾸기보다 수주 전시회에서 실전을 배워간다면 더 균형 잡힌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그런 작은 도전에 'K-패션'의 미래가 있고, 우리 패션산업의 앞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