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고객님,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기자수첩]"고객님,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엄성원 기자
2014.12.10 07:10

"공손한 말로 주문하면 커피를 반값에 드려요." 몇달전 한 커피전문점 업체가 '따뜻한 말 한마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인터넷 상에서 '천사같이 따뜻한 말'이라는 행사문구를 조롱하는 패러디물 쏟아졌지만 매우 참신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진짜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이벤트였다.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 '알바생들'은 명령조 말투나 반말을 일삼는 고객들의 막말을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는다. "새벽 2시에 OO편의점에 술 취해 들어와 반말로 욕한 손님놈(?), 밤길 조심해라." 젊은층이 많이 접속하는 인터넷 게시판에선 아르바이트 중 겪은 기분 나빴던 경험을 공유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의 전화 응대를 하는 TV홈쇼핑 상담직원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일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주문이나 상담전화 과정에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다. 서슴없이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아랫사람 대하듯 반말을 일삼는 고객들은 막대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홈쇼핑 업체들이 전화 상담직원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를 실시하고, 상습적으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고객들은 아예 전화 연결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극약처방까지 동원하지만 현장의 스트레스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OO번 고객님,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어느 커피전문점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물론 틀린 표현이다. 고객도 알고 직원도 안다.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극존칭을 쓰지 않으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니 안내 멘트를 바꿀 수 없다고 업계는 항변한다. 비슷한 표현이 또 있다. "고객님, 저희 카페라떼는 최고급 원두가 들어가시고 우유는 100% 국내산 우유만 쓰이셨습니다." '원두님'과 '우유님'이 몸을 담그신 카페라떼를 마시자니 절로 속이 거북해진다.

요즘 한 케이블TV 코미디프로그램에선 순식간에 '갑'과 '을'이 바뀌는 설정의 코너가 큰 인기다. 혹독한 날씨와 세상 인심에 뼛 속까지 시린 겨울날, 말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지는 못해도 천냥 빚을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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