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한 날씨 마음마저 지쳐갈 때, 자연 담은 '씨엘로 3 파쏘 로쏘 2024(Cielo 3 Passo Rosso)'

타들어 갈 듯한 햇볕과 높은 습도는 몸보다 마음을 먼저 지치게 한다. 무더위가 길어질수록 사람은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잠시 쉬어갈 여유를 갈망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이 품고 있는 담백한 생명력과 순수한 에너지인지도 모른다.
폭염 속 지친 몸이 집으로 향하던 어느 날, 아파트 화단 한쪽에서 담홍빛과 붉은빛으로 곱게 피어난 봉선화가 눈길을 붙잡았다.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순식간에 어린 시절의 여름을 데려왔다.
봉선화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마음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저녁밥을 일찍 먹고 나면 어머니는 잘 익은 봉선화 꽃잎과 초록빛 잎사귀를 사기그릇에 담아 곱게 찧으셨다. 여기에 소금 한 꼬집이나 백반 조각을 더해 작은 절구를 찧을 때마다 풋풋한 풀 내음과 꽃향기가 마당 가득 번져나갔다.
내 작은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정성껏 봉선화를 올려주시고 붉은 물이 번지지 않도록 비닐을 덮은 뒤 실로 단단히 묶어주셨다.
손가락 끝이 얼얼하고 답답했지만 혹시라도 비닐이 풀릴까 두 손을 가슴 위에 가지런히 모은 채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누가 더 곱게 물들었는지 궁금해했다. 서로의 작은 손톱 하나에도 웃음이 피어났고, 그 시절 자연은 가장 소박한 놀이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지금은 간편한 네일 제품과 화려한 아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손톱에 비닐과 잎사귀를 매단 채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 기다림은 어떤 편리함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자연과 함께였다. 사계절의 바람과 공기의 냄새를 맡고 흙을 밟고 여러 들꽃을 보고 만지며 자랐기에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메마르지 않은 감성을 품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해 본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어떤 자연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가?
◆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The Vegan Society) '비건 트레이드마크'
영국 비건 소사이어티(The Vegan Society)는 1944년 세계 최초로 '비건(Vegan)'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제정한 비영리 단체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비건 인증기관 가운데 하나로써 엄격한 심사를 거쳐 'Vegan Trademark'를 부여하고 있다.

독자들의 PICK!
우리는 와인을 고를 때도 대개 품종과 가격, 산지를 먼저 살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와인병의 라벨과 백 라벨에 잠시 시선을 머물러 보길 권하고 싶다.
이번에 소개하는 씨엘로 3 파쏘 로쏘 2024의 백 라벨에는 초록의 인증 마크가 나란히 자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다. 하나는 동물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비건(Vegan)의 증표, 또 하나는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토양을 지켜냈다는 EU 유기농(Organic)의 약속,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환경과 사람, 미래 세대까지 함께 끌어안는 Equalitas 3E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진심 어린 다짐이다.
와인 병 백 라벨의 작은 마크들은 그저 보기 좋게 꾸며놓은 화려한 디자인이나 마케팅용 문구가 아니다. 한 병의 와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떤 정성과 고집스러운 가치관을 통과했는지를 말없이 증명하는 생산자의 정직한 서명이다.
어쩌면 진정으로 좋은 와인은 입안에 감도는 맛보다 먼저,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철학으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 와인의 백 라벨은 생산자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오랜 역사와 신뢰할 수 있는 영국 The Vegan Society의 비건 트레이드마크는 와인 정제 과정에서 젤라틴, 달걀 흰자, 카제인, 이싱글라스 등 동물성 정제제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손톱 끝에 물들인 봉선화 빛깔처럼 소박하지만 오래도록 남는 유년의 추억을 기억하듯이 우리가 와인 한 병을 고를 때 그 안에 담긴 생산자의 철학을 알아채고 선택해 주는 것도, 그 작은 가치 소비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구와 다음 세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단단한 약속이 아닐까?
◆ 씨엘로 3 파쏘 로쏘 2024(Cielo 3 Passo Rosso)

-Region : Puglia, Italy
-Winery : Cielo e Terra
-Grape : Sangiovese + Negroamaro + Malvasia Nera
-Farming : Organic & Vegan Certified (EU 유기농 Euro-leaf, 비건소사이어티, Equalitas 3E 지속가능성 3대 친환경 인증
-Winemaking : 3 Passo(3단계) 아파시멘토 양조법
-Alcohol : 14.0% vol
◆ 테이스팅 노트 (Tasting Notes)
-외관 (Appearance): Clear, Deep Ruby with Purple Rim. 코어는 림까지 짙은 루비색을 유지하며 가장자리 부분에는 선명한 보랏빛.
-향 (Nose): Clean, Medium(+) Intensity. Primary(1차 향)로는 산지오베제와 네그로아마로 고유의 잘 익은 블랙 체리, 자두, 프룬(말린 자두), 라즈베리 잼의 농축된 과실 아로마가 주를 이룬다. Secondary(2차 향)로는 오크 숙성에서 기인한 바닐라, 스위트 스파이스(클로브, 감초), 갓 볶은 원두 향이 오버랩되며, 유기농 포도밭에서 비롯된 흙의 뉘앙스가 반영하듯 서늘한 숲속 흙과 삼나무의 Tertiary(3차 향) 요소가 복합성을 더한다.
-팔렛 (Palate): Off-Dry to Dry, Medium(+) Acid, Medium(+) Tannin, Full Body,
입안에서는 산지오베제의 선명한 산미가 뼈대를 잡고, 말바시아 네라와 네그로아마로의 아파시멘토 풍미가 기분 좋은 잔당감(Off-Dry)과 볼륨감을 형성. 타닌은 벨벳처럼 매끄럽고 14%의 알코올감이 어우러져 좋은 구조감(Structure)과 밸런스를 보여준다.
-결론 (Conclusion): Very Good : 아파시멘토 공법 특유의 풍성한 과실미와 친환경 재배 방식의 시너지가 돋보인다. 탄탄한 구조감과 매끄러운 질감, 그리고 과실과 스파이스가 만드는 길고 입체적인 롱 피니시가 탁월하다. 지금 마시기에도 훌륭하며, 향후 3~5년간의 추가 병 숙성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 와이너리와 와인이야기, 파밀리아 씨엘로와 'Cielo e Terra'
이탈리아 베네토주 몬토르소 비첸티노(Montorso Vicentino)에서 시작한 Cielo e Terra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와이너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에서 시작된 파밀리아 씨엘로 와이너리의 뿌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Veneto)주의 비첸차(Vicenza) 지역,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 바로 인근 포도밭에서 증조부인 조반니 씨엘로(Giovanni Cielo)가 작은 농지를 매입하면서 와이너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대로 가문이 지닌 땅에 대한 존중과 열정을 이어받아, 세대를 거듭하며 소규모 포도밭에서 이탈리아 전역 및 세계로 도약하는 유수의 와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9년 지역 농가 생산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씨엘로 에 테라를 출범하였고, 친환경 오가닉과 좋은 품질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추구하며, 오늘날에는 세계 60여 개국 이상에 와인을 수출하는 이탈리아 대표 생산자로 성장했다.
'3 Passo'는 씨엘로가 선택한 남부 토착 품종 블렌딩 세 품종, 산지오베제(Sangiovese), 네그로아마로(Negroamaro), 말바시아 네라(Malvasia Nera)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아파시멘토기법을 통한 풍미와 오크숙성을 통해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비건, 유기농,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철학까지 더해져 자연을 향한 세 번의 약속처럼 다가온다. 이름 그대로 엄선된 이탈리아 포도, 유기농 재배(Organic Grapes), 그리고 비건 양조(Vegan Winemaking) 라는 세 가지 철학을 하나의 브랜드에 담아낸 와인이다.
◆ 푸드 페어링 (Food Pairing)

- 일반 페어링: 구운 양갈비, 그릴드 비프 스테이크, 토마토 파스타, 트러플 버섯 리조또, 숙성 치즈(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고다)
- 비건 페어링: 튀긴가지피망볶음, 버섯 리조토, 구운 파프리카 통밀 피자
- 혼술 페어링: 복숭아 브리치즈구이, 바나나 브렐레
오늘날 좋은 와인은 더 이상 맛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어떤 땅에서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철학을 담고 있는지가 한 병의 가치를 완성한다. 씨엘로 3 파쏘 로쏘는 바로 그런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와인이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와인은 땅의 역사이자, 사람이 건네는 가장 진솔한 대화이다."
현 한국와인소비자협회(KWCA) 회장으로, 경희대학교에서 와인소믈리에학 석사와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전 와인바, 전문 와인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관점에서 와인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 니즈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비건 와인 및 와인 소비자 행동과 관련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으며, 국내 주요 와인 품평회와 와인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협회장으로서 올바른 와인 소비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교육과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