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훌륭한 지도자와 뛰어난 참모

[MT시평]훌륭한 지도자와 뛰어난 참모

박종구 기자
2012.05.10 06:23

세상이 상당히 시끄럽다. 전직 장관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관련자가 줄줄이 검찰에 소환됨에 따라 연일 언론의 취재 경쟁이 뜨겁다. 소위 유력인사 또는 실세의 낙마는 바람직한 지도자와 참모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정관성세(貞觀盛世)는 중국역사상 군신이 하나가 돼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에 전력투구한 시대로 기억된다. 무엇이 이세민과 그의 참모를 후세의 칭송을 받는 아름다운 군신관계로 만들었을까?

이세민은 뚜렷한 역사의식을 갖고 국정에 임했다. 현무문의 정변으로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제가 된 이세민은 백성이 가장 중하고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그는 통합과 섬김의 정치를 국정의 기본으로 설정하고 폭넓은 인재등용과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는 늘 뚜렷한 역사의식을 훌륭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으로 생각했다. 중국 정사 24사 중 8사를 이 시기에 완성한 것도 그가 왕조의 흥망성쇠를 깊이 인식했음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장래에 대해 끊임없는 우환의식을 갖고 전쟁을 좋아하면 백성은 피폐해지고 성공한 자는 더욱 근신한다는 지족(知足)의 교훈을 몸소 실천했다. 백성을 살찌우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사명이며 허영을 버리고 실속을 취하는 실사구시의 국정운영에 전력투구했다.

이세민은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고 발탁해 당나라를 인재강국으로 만들었다. 집권 초기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를 재상으로 등용함으로써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이 계획하면 두여회가 집행함) 뛰어난 재상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왕규, 위징, 저수량 같은 뛰어난 참모를 재상으로 발탁함으로써 황제와 재상이 국정의 동반자가 되는 모범적 군신관계를 정립했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세 풀을 알 수 있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야 충신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신하가 맘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줬다.

또 이세민은 문관, 무관, 간관이 삼위일체가 돼 국정을 견제와 균형토록 함으로써 대당제국 건설을 촉진했다. 돌궐족의 무력에 밀려 수모를 겪은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해 천가한(天可汗)으로 추대되는 등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했다. 특히 간언에 대해 관대해 언로를 개방했다. 시대의 명신인 위징(魏徵)이 "감히 간언했고 능히 간언했고 훌륭히 간언했다"는 말을 남길 정도니까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애민주의(愛民主義)를 실천했고 '천하는 한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만인의 천하'라는 자세로 언로를 활짝 열었다.

이세민은 신하의 직언을 과감히 수용해 군신일체론을 몸소 실천했다. 일단 믿고 일을 맡기면 전폭적으로 신임하는 폭넓은 도량을 보여줬다. 친인척을 배제하고 비(非)한족을 과감히 등용하는 등 개방적 인재정책을 추구했다. 사람을 씀에 있어서 소인배의 득세를 경계하고 고집스런 억측과 편견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중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중시해 마치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힘을 합치듯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갔다.

위징 사후 이세민은 "사람이 구리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옛일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못을 알 수 있다. 이제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거울 하나를 잃은 셈이다"는 말을 남겨 명신의 죽음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과히 눈물겨운 정경 아니겠는가.

훌륭한 지도자는 뛰어난 참모의 보좌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군신이 일체가 되어 통합과 섬김의 정치를 추구해 정관시대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우리에게 지도자와 참모 관계의 참된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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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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