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회책임투자 제대로 보기

용어의 늪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DJ정권의 대북정책 브랜드였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은 이솝의 한 우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나이의 옷을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닌 부드러운 햇볕이었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일견 함축적으로 정책기조와 내용을 잘 설명한 기발한 네이밍인 듯싶었다.
그 ‘햇볕’이라는 용어의 프레임에 갇혀 정책의 유연성이나 운신의 폭을 우리 스스로 제한한 감이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햇볕의 목적은 북한을 개혁 개방의 장으로 인도하여 한반도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수단인 햇볕이 목적으로 둔갑되는 전도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아무리 햇볕이 좋아도 햇볕만 내리쬐면 이 땅은 사막이 된다. 대기현상에는 온갖 다양한 자연현상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순환되어야 한다. 바람, 비, 이슬, 서리, 눈과 추위가 어우러져야 이 땅의 생명체가 생성하고 번식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자연현상 속에서라야 햇볕의 따스함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햇볕만으론 사나이의 옷을 벗길지는 모르지만 사나이를 진정으로 건강하게 할 수는 없다.
비단 정책만이 아니다. 새로운 분야나 이론을 바라볼 때에도 하나의 창(窓)만으로 그것들과 마주하면 스스로 편협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흡사 관점의 감옥에 갇히는 격이다.
최근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ing) 분야에도 이런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먼저 사회책임투자는 광대역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술·담배·도박 산업들을 비윤리적이라 낙인찍고 투자에서 배제하는 ‘윤리투자’에서부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들을 기업경영의 비재무적 위험 내지 기회요인으로 보고 이를 밸류에이션에 반영하는 현대적 ‘책임투자’까지 그 전략과 투자방법론은 매우 다양하다.
양자는 ‘사회책임투자’로 동일하게 지칭되지만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 윤리투자의 목적은 투자라는 수단을 활용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것의 구현을 위한 것이라면 수익률의 훼손도 기꺼이 감수하는 투자다. 반면 책임투자의 목적은 최적의 장기투자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결코 수익률을 희생할 수 없다. 오로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다양한 재무 지표와 ESG분석 지표들을 혼합해서 투자과정에 반영할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이런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일부 언론, 학자, 정치인들은 윤리투자의 프리즘만으로 책임투자를 경직되게 바라보고 논평한다. 그들은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 펀드로 술, 담배 주식에 투자하다니!”, “동물실험에 참여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나?” 등 문제제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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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국민연금이 실행하는 사회책임투자는 ‘윤리투자’가 아니라 ‘책임투자’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즉 기본적으로 책임투자자들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 주제와 연루된 기업을 투자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투자주식을 선별할 때 ESG의 특정한 한두 가지 측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ESG로 대표되는 비재무적 성과가 안 좋더라도 재무적 성과가 월등이 좋다면 해당 주식을 매수 보유할 수도 있다.
투자도 시장도 생물이다. 이런 생물같이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최대수익을 추구하는 책임투자자 역시 생물처럼 유연해야 한다. 이들은 최적 수익률 달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좋은 주식을 사기도 하고, 현재는 안 좋으나 미래의 가능성을 사기도 한다. 나쁜 주식이거나, 좋은 주식을 편입했지만 나빠진다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그것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한다. 이렇게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책임투자자들이다. 하나의 창으로만 사회책임투자를 바라보고 재단하는 것은 늘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