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에도 싹이 돋고 마른 나뭇가지에도 물이 올라 잎이 난다. 특히 연녹색 어린잎이 저 파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듯 자라 오르는 것을 보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 갖는 위대함을 다시금 느낀다. 예전처럼 겨울과 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봄이 온다는 것, 봄이라는 것이 주는 그 설렘과 기대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이 있어야 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지난 겨울을 잊지 않을 때 봄의 의미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 사회는 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왔고 그것을 변화의 기회로 삼아 지금까지 달려왔다. 지난번 총선에서 우리가 선택한 결과를 보더라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거와 다른 식으로 권력이 재편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도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봄날의 희망처럼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그동안 국민들이 보인 지역과 정당 중심의 투표행위가 미약하나마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이와 같은 변화의 몸짓이 전국 모든 지역으로 펴져나갈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하다. 지역과 정당 중심의 투표 덕분에 당선된 사람들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을 무서워할 필요도 거의 없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절박함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의 명패를 가지고 나오기만 하면 당선된다면 어느 정치인이 그 지역 사람들의 눈치를 볼 것이며 그들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려고 하겠는가.
따라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투표행위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각자가 지난번에 뽑아준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나름의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다음 그들이 이번 선거 때까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자신의 판단기준을 이용해서 평가한다. 공약을 얼마나 지켰는지, 주어진 일을 얼마나 잘 달성했는지 등 여러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그 성적이 가령 중간 이하라고 판단되면 이번 선거에선 무조건 다른 정당, 다른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평가에 따라 새로운 사람에게도 기회를 줌으로써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입장과 행위가 유권자 본인에게 얼마나 유리하고 혜택을 주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가 갖는 큰 의미 중 하나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각자가 자신의 권리와 이득을 투표행위를 통해 표현하고 옹호하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집단간 이해관계가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한 파악과 더불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치인은 대부분 국민과 지역주민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정치를 시작한다. 또한 그러한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하듯이 꽤 많은 정치인이 일단 권력을 얻고 나면 더욱 권력지향적으로 바뀌고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는 데 관심이 더 많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생각을 과신하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관습에 기초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변화에 둔감할 수 있다.
정치인의 이러한 습성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유권자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사회의 구성원들 역시 우리 정치의 현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대충 뽑아놓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욕만 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거기에 걸맞게 행동할 때 주인으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이번 봄이 더욱 설레는 것은 우리 사회에도 이와 같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