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휘두른 흉기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기도 하고 방에서 잠자던 여성이 낯선 괴한에게 살해되기도 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지나가던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노인을 폭행하거나 장애인을 괴롭히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붐비는 도시에는 사건과 사고가 있기 마련이지만 근래 발생한 일들은 상대방에 대한 혐오에서 기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흉기를 빼들고 폭력배나 살인마, 강간범으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녀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내는 일도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선생님 중에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남이 만드는 요리에 들어간 재료는 무엇인지, 화학첨가물은 얼마나 들어갔는지 걱정이 앞서니 직접 만들어 먹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믿음이 가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다 보니 냉장고의 크기만 갈수록 커져간다. 이제 서로 시선을 피하고 문을 걸어잠그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모두가 조심하고 위험의 원천을 차단하면 더 안전해질까. 역설적이게도 서로에 대한 경계의 강화는 우리를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킨다. 담장을 높이고 바깥세상과 거리를 둘수록 위험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된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정도의 지식과 경험, 정보를 공유한다. 양자역학에 대해 당신과 당신 친구가 아는 정도가 비슷한 것처럼 친구가 모르는 것은 당신도 모르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위험에 직면한 경우 해결책을 찾아내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있지 않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들은 과연 누가 제공한 것인가. 사람을 믿지 못해 높게 친 담장 안에서 오히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울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다 보니 길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보이는 반면 인터넷 속의 사람들은 모두가 이웃이고 친구처럼 느껴진다. 바깥 세상은 험악해도 인터넷은 안전한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잘못된 소문과 정보는 또 다른 위험의 씨앗이 되고 만다. 그렇게 담장은 의미를 잃고 어느새 위험은 코앞까지 다가온다. 안전을 향한 발버둥 끝에 원점으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불안은 경계를 강화하도록 유도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멀리하게 만든다. 그렇게 서로 간에 담을 높이 쌓을수록 우리 모두는 위험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경계가 삼엄하기 그지 없는 서울 강남의 고가 주상복합이나 아파트는 비극적 현실을 드러내는 시각적 징표다. 육중한 게이트 속에 갇힌 상류층의 모습에서 범죄가 일상이 된 중남미 국가의 사례를 떠올리는 것이 무리일까. 무장 경호원이 아이들 등굣길을 보호하는 상황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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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던 골목길 풍경이 정겨운 이유는 그 안에 삶과 안전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동네 시장 상인의 웃음 속에 우리 식탁의 먹거리 안전도 담겨있을 수 있다. 불안은 다시 관계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시점임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회피하고 의심하기보다 관계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