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청년구단'이 결국 문을 닫았다고 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지만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백종원이라는 걸출한 요리·경영전문가가 멘토로 활약했지만 입지조건과 코로나19라는 현실은 냉혹했다.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며 마음으로나마 응원했는데 아쉽고 서운하다.
청년의 실패는 당연하다. 청년은 삶이라는 운동장에서 무수한 헛발질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 중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에게 온전히 '실패'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청년이란 말에는 불안과 희망, 결핍과 충만, 실패와 도전, 잠재성과 가능성이라는 이중의 상징이 함께 들어 있다.
흔히 '꼰대'로 불리는 이들은 청년의 이런 이중성을 무시한다. "어린놈이 뭘 안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요새는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가는 곤욕을 치르기 십상인지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욕지기를 꾹 참고 사는 꼰대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뭘 모르기' 때문에, '머리에 피도 안 말랐기' 때문에 아름답다.
물론 청년을 신체나이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젊은 꼰대도 있고 늙은 청년도 있다. 문제는 진보와 퇴보가 뒤섞여 불안한 이중의 가치 속에 얼마나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넘어졌다고 주저앉으면 청년이 아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비로소 청년이다.
장년이 청년보다 더 가진 게 있다면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경험 정도다. 안정과 경험은 과거 우리의 삶을 지배한 원리가 지금도 작동하며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 존중받는 가치다. 태평성대가 이어지면 장년의 역할이 커진다. 하지만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안정과 경험의 가치가 반 토막 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모습을 바꾸려 할 때마다 청년을 소환했다. 우리 근현대사가 증거다. 유관순, 윤동주, 김주열, 전태일, 이한열은 모두 푸르디 푸른 청년이었다. 이들의 도전과 실패가 우리의 독립과 민주, 산업을 일궈왔다. 이들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로 충만한 희망을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근대 중국의 사상가 천두슈는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면서 '삼가 청년에게 고함'(敬告靑年)이라는 글을 썼다. 1910년대, 신문화운동의 진지가 된 잡지 '신청년'(新靑年)의 창간사였다. "노예가 되지 말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라"고 일갈한 그는 후퇴와 진보, 쇄국과 세계, 허울과 실질, 공상과 과학을 대비하면서 청년이 취해야 할 가치를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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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두슈가 서로 대비되는 가치로 동시대 청년을 불러낸 까닭은 청년의 위치가 그만큼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꼰대들은 청년의 이런 이중성을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 이중의 가치를 흔들어대며 실패를 암시하고 불안을 더하면서 그들의 도전을 막아보려고 한다. 그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청년의 가치를 착취한다. 자칫 판단을 그르치는 청년은 영악한 꼰대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청년구단'이 문을 닫은 사이 어떤 청년은 야당 대표가 됐고, 어떤 청년은 청와대 비서관이 됐고, 또 어떤 청년은 야당 대변인이 됐다. 인생의 가장 푸르른 때에 수많은 청년을 대표하는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이 꼰대의 가치와 타협하지 않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 청년의 희망과 도전이 넘쳐나도록, 정파를 넘어 응원해야 마땅한 일이다.
대전 '청년구단'은 정비를 거쳐 거듭난다고 한다. 주변 상권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청년 예술인의 창작과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이다. 그렇게 바뀐 '청년구단'은 어쩌면 또 실패할지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 번째 실패와 세 번째 도전, 세 번째 실패와 네 번째 도전이 이어지더라도 응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