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한일역전이 진정한 광복이다

[MT시평]한일역전이 진정한 광복이다

이윤학 기자
2021.08.20 02:05
이윤학 대표
이윤학 대표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 1592년 4월 조선을 침공한 일본군에 동래부사 송상현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히며 한 말이다. 임진왜란은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여러 제후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해 일본 국내의 안정과 통일을 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송상현의 말에 있듯이 그들은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들의 명분은 조선 침략이 아니라 명나라 정벌을 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아예 조선은 염두에도 두지 않은 것이다. 실제 수도 한양은 침략된 지 한 달 만에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만다.

7년 간의 지루하고 지옥 같은 전쟁이 끝나고 마침내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전후 후폭풍이 매우 컸다. 그래서 임진왜란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조선시대 전후기를 구분 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인들은 한국, 한국인을 그들의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500년 동안 침략전쟁을 한반도에 몇 번이나 하고 결국 식민지로 만든 나라. 개화하고 근대화해줘 자신들이 은혜를 베푼 나라라고 일본인들의 무의식 속에는 우월적 자신감이 퍼져 있는 듯 보인다.

며칠 전이 광복절이었다. 광복한 지 76년 지나면서 정치적, 사회문화적으로는 광복이 됐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일본에 한참 뒤처졌거나 종속된 산업도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는 동안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일역전(韓日逆轉)의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국가신용등급(S&P 기준)은 1990년 한국은 A+로 일본 AAA에 비해 4단계나 낮았으나 30년이 지난 2021년 한국은 일본보다 2단계 높은 AA등급을 받았다. 국가경쟁력 순위지표(IMD)에서도 1995년 일본은 4위에서 2020년 34위로 추락한 반면 한국은 26위에서 23위로 상승해 한일역전에 성공했다. 아직 1인당 명목GDP(국내총생산)는 한국이 일본보다 적으나 실질적인 상품구매력을 나타내는 PPP 기준 1인당 GDP는 이미 2018년 한일역전에 성공해 2020년에는 한국이 4만4621달러로 일본의 4만2248달러를 넘어섰다. 노동생산성을 나타내는 취업자 1인당 GDP도 한국이 8만1071달러로 일본(7만6189달러)을 앞지른다. 이런 한일역전 현상으로 성장률이나 환율의 변화가 없다면 2040년쯤에는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의 1.7배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였다. 1989년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중 14개사가 일본 기업이지만 30년 지난 현재 세계 상위 20개사 중 일본 기업은 한 곳도 없다. 반면 세계에서 100년 이상 된 기업의 35%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은 그만큼 일본 경제가 노쇠했음을 방증한다. 요즘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선 스스로 "미래를 잉태하지 못한 경제"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한다고 한다. 일본 시가총액 상위기업에 소프트뱅크를 빼고 나면 모두 구경제 기업뿐이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디지털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상위기업이 가득 차있다.

임진왜란 이후 우리를 한 번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던 일본. 이제야말로 경제에서 한일역전이 이뤄지면서 진정한 광복(光復)이 오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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