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 원격의료 도입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지난 20년 내내 의사들도 반대하고 시민단체도 반대했다. 의사협회는 대형병원 중심 진료가 더욱 강화돼 일차의료기관인 의원급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민간보험에서 대형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민영화, 의료영리화의 시초가 원격의료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처럼 원격의료가 불법인 나라는 찾기가 어렵다. 이게 논란의 대상이 된 사례도 거의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특별히' 한국에서는 원격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외국에서 원격의료가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과 계층을 대상으로 시도된 반면 한국에서는 의원이 없는 동네가 없을 정도로 의료공급이 충분하기 때문에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팬데믹의 등장은 이런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아래 나열된 숫자들을 보라.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전 미국노인의료보험제도(Medicare) 1차 진료건수 중 원격의료 비율은 0.1%에 불과했으나 팬데믹 이후인 2020년 4월에는 43.5%로 상승 △2021년에는 전 세계 영상진료 비율이 2019년 추정치인 1%보다 확대된 5%에 달할 것으로 전망 △환자의 약 74%는 의사를 직접 만나는 대신 기술을 사용해 의사와 의사소통하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 △약 67%의 환자가 원격의료를 사용하면 의료에 대한 만족도가 다소 또는 크게 상승한다고 응답.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2년 1월 기준 원격진료를 경험한 환자는 약 352만명으로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2020년 2월 2만5000명에서 불과 2년 만에 1500% 증가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확산으로 재택치료가 급증하면서 코로나 환자의 원격상담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유행성결막염이 돌면 안과에 가야 했고 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내과에 가야 했다.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로 넘쳐났고 응급실은 오만 환자가 뒤섞였다. 병을 고쳐야 할 병원이 실은 감염병 전파의 온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병원은 더이상 감염병 환자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병원문 밖에서 체온을 재야 했고 열이 나면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어쩌다 미리 못 걸러내면 병원문을 닫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잠시나마 원격의료를 허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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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어떻게 임시적, 한시적, 예외적이어야 할 일인가. 치료적 접근 측면에서 코로나19와 독감 같은 다른 감염병을 달리 대할 이유는 없다. 감염병 치료에 관한 한 비대면 치료가 1차적 접근이어야 한다. 만성병 관리와 1차 의료 강화도 마찬가지다. 역시 원격의료를 전제하지 않고는 적절한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전면적인 원격의료 도입으로 제도의 정착과 기술의 접목, 더 나은 의료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때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 모두가 원격의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전 정부들이 원격의료를 반대해 정책이 시행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시범사업만 여남은 번을 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도 원격의료 확대 가능성을 얘기했고 심지어 대법원도 의료법상 직접 진찰이 반드시 대면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애초 정부의 정책의지 문제가 아니라 의사,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문제였다. 의사들이 대대적으로 파업하며 의료현장에 대혼란을 일으킨 2020년을 돌이켜보라. 당시 파업의 가장 큰 이유는 공공의대 설립이었지만 원격의료 반대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결국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느냐에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적어도 필수의료 영역에서는 합리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원격의료제도가 정착된 사회를 만들어내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