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권기술, 즉 기술패권은 경제이고 안보다. 지금의 국제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무력이나 이념이 아닌 경제다.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관계는 '무력'이라는 하드파워에 의해 결정됐다. 이후 냉전 시대에는 '이념'이라는 소프트파워가 세계 질서를 움직였다.
21세기의 국제관계와 질서는 '경제'가 움직인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다른 나라에 종속되기도 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기도 한다. 그 핵심은 '기술'이다. 미래 경제를 결정하는 것이 '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양강 국가, 미국과 중국이 기술패권을 두고 극심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지만 기대와 달리 미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항간에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대만"이란 말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의 승리로 귀결되면 중국도 벼르고 있던 대만 침공을 감행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만은 미국과 '기술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시스템 반도체 1위 회사인 대만의 TSMC는 생산량 중 60%를 미국에 수출한다. TSMC가 무너지면 미국 산업과 경제가 마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과 한국이 공격당하면 무조건 개입한다"고 공언했다.
한국도 미국과 기술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반도체 종주국이다. 반도체 기술패권을 가진 덕에 한국은 미국과 더욱 견고한 동맹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만약 한국이 반도체 패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긴다면, 경제적 위기뿐만 아니라 안보적 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은 국정 운영의 중심을 '과학'에 둘 것을 선언했다. 그와 공동정부를 꾸릴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슬로건 역시 '과학기술 강국'이었다. 윤 당선인은 과학기술 분야 대표 공약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 미래 도시 구축 △연구자·개발자·기업인·행정가가 국가 과학기술 전략 로드맵을 수립하는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위원회' 신설 △지방거점 대학 반도체학과 신설을 통한 인재 양성 등을 공약했다. 안 위원장은 '과학기술부총리제'와 청와대에 과학기술 수석보좌관을 둘 것을 약속했다.
'과학기술부총리제'는 필자가 오랫동안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구축을 위해 주장해온 바다. 반도체 패권 수성과 핵심 첨단산업 육성, 과학기술인재 양성 등은 과학기술계와 기업계 등의 오랜 숙원이다.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의 진정성 있는 공약 실천을 기대한다. 이 땅의 내로라하는 기술인, 과학자, 기업인, 산업인, 연구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공약의 실현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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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엄중하다. 미-중 기술패권경쟁, 포스트 코로나,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일 반도체 전쟁'처럼 경쟁국들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 산업계를 노리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낮추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지정학적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해 과학기술 패권국가로의 도약을 이루는 것뿐이다. 반도체 패권을 지키고 제2, 제3의 패권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만 한다. 정치인이 아닌 국민의 한 사람, 한 과학기술인의 절박한 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