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벤처캐피탈의 후견적 역할에 대하여

[투데이 窓]벤처캐피탈의 후견적 역할에 대하여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2.03.31 02:03
양지훈 변호사
양지훈 변호사

스타트업 A사는 혁신적인 IT기술을 통해 중간유통 단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물류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개발자 출신 대표는 우직하게 계획을 1년 넘게 밀고나가 결국 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실현했다. 출시된 서비스는 빠르게 고객을 모으기 시작했다.

A사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회사의 체계가 제대로 잡힌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노무담당자가 없어서 성과보상이나 인사발령을 대표의 즉흥적인 결정에 따랐고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은 적도 있다. 회사 내 실질적인 임원은 대표 혼자여서 법률이 예정한 형식적인 이사회 결의사항도 이행하지 못한 사실도 있다.

그럼에도 A사 대표는 사업확장에 주력하는 한편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 위해 외부 IR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재무적 성과만을 보자면 투자유치가 쉬워보이지만 현실은 어떨까.

벤처캐피탈(VC)업계는 흔히 해당 스타트업이 속한 시장이 얼마나 큰지, 회사 대표이사와 동업자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등이 주요 투자판단 기준이라고 말한다. 특히 창업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경우엔 원래 생각한 대로 사업이 순항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창업팀이 얼마나 흔들림 없이 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지 보는 것이 필요하며 반대로 사업이 성공했을 때는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지 시장의 크기를 통해 가늠하는 것이다. VC의 눈으로 볼 때 A사는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다만 ESG 투자기준을 적용해보면 사회(Society)나 지배구조(Governance) 부문에서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부문 평가에는 회사의 인사·노무 관련 법령이 준수되는지, 외부 이해관계자와 분쟁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등과 같은 소극적 판단지표부터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가 사회를 위한 새로운 수익창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것인지와 같은 적극적 판단요소까지 매우 다양한 ESG 투자에 대한 실사가 진행될 수 있다. 지배구조부문에서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 주주총회가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운영되는지가 ESG 투자실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부 평가부문에서 미흡한 결과가 있다면 ESG 투자를 하는 VC는 A사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VC는 이들 초기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조력하는 파트너로서 역할과 함께 일정한 후견 역할을 함께하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투자업계에서 극초기기업의 성장을 돕는 투자사를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ESG 투자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후견적 역할은 이제 필수가 돼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기성기업과 같이 견고한 제도를 운용하기란 애초 어려운 일이다. A사의 경우에도 인사·노무분야의 위법사항이나 주주총회나 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회사의 중요한 결정사항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아직 직원이 10명 남짓에 불과하고 매출액이 10억원도 되지 않는 A사에 VC가 기계적으로 가혹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창업시장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초기기업의 경우 성장에 따라 회사 내·외부에서 어떤 질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분명 존재한다. 외부 투자자로서, 후견인으로서 VC가 엄격한 기준으로 회사에 대한 ESG경영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란 바로 그러한 도약 시점 이후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초기기업의 ESG 투자는 일정기간 유예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그 시점이 도래했을 때 경영에 조언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VC는 몇 년 안에 시장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회사에 투자하는 위험을 부담하면서도 ESG 투자자로서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만 하는 어려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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