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 통닭 2마리를 공짜로 먹은 죄. 2년 전에는 과일노점상 앞을 지나다 "내가 구청에 신고해서 다시는 장사 못해먹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죄. 얼마 전에는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 출동한 경찰을 밀친 죄. 공소장에 적힌 할아버지의 죄명은 사기죄, 협박죄, 공무집행방해죄였다. 계산할 것처럼 하다 통닭을 그냥 가져갔으니 사기죄, 구청에 신고한다고 겁을 줬으니 협박죄, 출동한 경찰을 밀쳤으니 공무집행방해죄란 얘기니 영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공소장은 어디선가 오려붙인 느낌이 강했다.
통닭집 아저씨와 과일노점상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경찰을 밀친 그다음날 고소장을 제출했다. 통닭 2마리와 말 한마디를 몇 년씩 마음에 담아둘 정도로 남다른 뒤끝을 가진 사람이 한 동네에 둘이나 존재하고 어느날 동시에 할아버지를 고소할 마음을 먹을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아무리 봐도 3가지 죄가 한데 엮이게 된 데는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구치소에 접견을 가 울긋불긋 부풀어 오른 코 위에 얽어 있는 붉은 실핏줄을 보는 순간, 할아버지의 진짜 죄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폭. 2012년에야 세상에 등장한 이 단어는 당시 한 경찰간부가 취임하며 창조해낸 단어다. 그는 '술을 마시고 상습적으로 지역주민들을 폭행하거나 관공서·상점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를 주폭으로 규정하고 조폭과 더불어 중점적으로 척결할 것을 공언했다. 이 수사의 긍정적인 측면은 분명했다. 할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혀줄 단서가 있으리란 기대에 시장통을 탐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할아버지는 비행을 저지를 때마다 훈방, 혹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돌아와서는 신고한 상인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이를 목격한 시장상인들은 신고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공권력이 사라진 시장골목에서 한동안 할아버지는 패왕이 됐던 것이다.
마냥 박수를 칠 수만은 없었던 것은 수사과정 때문이다. 수사기록에는 주폭척결이라는 비전이 어떤 경로로 실천됐는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술을 마시고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던 할아버지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잡혀오자 경찰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어서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사람한테 그동안 피해본 것이 없는지"를 묻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할아버지의 3년 전, 1년 전 비행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구속됐다. 각각 처벌받았다면 벌금 100만원도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
대통령 임기 초마다 관행적으로 '○○사범'척결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온다.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위에서 주도하는 수사의 특징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개인의 사진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웃들, 직장동료에게 "혹시 이 사람한테 피해본 거 없어요"라고 묻는 식의 수사가 과연 온당한 걸까. 그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사안이 과잉 재해석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삼청교육대가 결국 문신한 채로 해수욕장을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애먼 청년들을 잡아가두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