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한국 뮤지컬, 갈 길이 멀다

[투데이 窓]한국 뮤지컬, 갈 길이 멀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2.07.20 02:05
임대근 교수
임대근 교수

뮤지컬 '엘리자벳'의 10주년 기념공연이 캐스팅 논란으로 시끄럽다. 지난 4차례 공연에서 엘리자벳 역을 맡은 배우 가운데 누가 다시 무대에 오를지 관심을 모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옥주현과 이지혜의 더블캐스팅. 이지혜는 엘리자벳을 연기한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다른 배우도 모두 '엘리자벳' 무대는 처음이다.

엘리자벳은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다. 천방지축 소녀 엘리자벳은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죽음'을 만나게 되고 '죽음'은 그녀 곁을 떠돈다. 엘리자벳은 황후의 자리에 오르지만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면서 유럽을 방황한다. '죽음'은 무정부주의자 루케니를 사주해 그녀를 암살하게 한다. 루케니는 100년 동안 목이 매달린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엘리자벳' 캐스팅이 발표되자 대부분 옥주현과 가까운 이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배우 김호영은 SNS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을 올려 이런 상황을 비꼬았다. 옥주현이 뮤지컬계 내부의 영향력으로 캐스팅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발끈한 옥주현은 "사실 관계 없이 주둥이와 손가락을 놀린 자, 혼나야죠"라며 김호영과 네티즌을 고소했다.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빈극장협회(VBW)가 1992년 초연했다. 빈극장협회의 작품으로는 '모차르트!'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미국의 브로드웨이를 '고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국과 미국의 힘이 막강하다. '엘리자벳'은 독일어 작품으로는 드물게 우리 관객을 만나면서 호평받았다.

캐스팅 논란이 이어지자 뮤지컬배우 최정원 등이 배우와 스태프, 제작사의 책무를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옥주현은 동료배우를 고소한 데 대한 사과를 발표했다. 김호영과 통화하여 화해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그러나 8월 공연을 앞둔 '엘리자벳'의 티켓예매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쓸데없는 논란이 관객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번 논란을 개인의 '갑질'로 보는 이들도 있고 뮤지컬계 내부의 갈등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갑질'이라면 개인이 반성하면 될 일이지만 뮤지컬계의 갈등이라면 문제가 더 커진다. 옥주현은 가수 출신 뮤지컬배우 그룹을 대표하고 김호영과 최정원 등은 뮤지컬 전문배우 그룹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장르인 까닭에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나뉜다. 창작뮤지컬은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경우다. '오리지널'은 해외 공연이 배우와 스태프를 그대로 데려와 공연하는 경우다. '라이선스'는 로열티를 지불하고 해외 공연을 사오는 경우다. 이 경우도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복제)와 현지 상황에 맞게 개작을 하는 '논레플리카'가 있다.

'엘리자벳'은 19세기 오스트리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관객을 위해 역사적 맥락을 과감히 제거하고 한 여성의 기구한 운명으로 재해석한 '논레플리카'에 해당한다. 뮤지컬은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이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가 뮤지컬의 고향이라고 칭송받는 까닭은 그 안에 음악, 공연, 스토리가 뒷받침되는 탄탄한 문화의 힘이 버티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국내 뮤지컬티켓 판매액은 2340억원에 이른다. 연극, 클래식, 오페라, 무용 등을 망라하는 공연시장에서 76.3%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우리 공연콘텐츠를 뮤지컬이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이를 위한 작은 무대를 제외하면 창작뮤지컬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들여오는 라이선스 공연이다. 우리 문화의 수준이 훌륭하다는 자부심을 증명하려면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 버금가는 음악과 공연, 스토리를 갖춘 창작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내 편. 네 편 따지며 아웅다웅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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