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기존 규칙을 폐기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다른 국가에 이를 강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세계에서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규칙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80년 동안 미국이 만들고 유지한 것이다. 자유무역과 달러를 기반으로 한 원자재와 에너지 자원에 대한 결제시스템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이런 규칙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트위터에 자유무역은 많은 이익을 가져왔지만 부의 집중, 취약한 공급망에 대한 과도한 의존, 제조업의 몰락과 같은 비용을 치렀다고 언급했다. 다른 나라로 하여금 관세를 인하하고 각종 무역장벽과 규제를 낮추거나 폐지하도록 압박하는 선봉에 선 미국 무역대표부가 자유무역의 본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당장 미국이 자유무역의 폐기로 향하지는 않겠지만 기존 강화하던 선택적 보호무역과 지역블록화의 흐름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출범하면서 자유무역은 국제교역에서 핵심적인 규칙이 됐다. 관세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제거하며 다자간 교역규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최혜국대우 공여원칙을 확립함으로써 세계 무역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할 수 있었다. 40년 넘게 유지된 GATT체제는 이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 마라케시협정 등을 토대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이어지면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는 확고부동한 보편적인 질서로 변화했다. 70년 넘게 이어진 자유무역의 확대 흐름 속에 신생 독립국이던 대한민국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대부분 국가가 채택한 수입대체전략 대신 적극적인 수출전략을 통해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자유무역의 확대와 함께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해서 형성한 다자간 자유무역 시스템이 중국의 불투명한 국가 주도 산업지배정책으로 인한 문제해결에 실패했다고 인식했다. 이로 인해 무역에 대한 접근방식을 재검토하고 미국 역시 적극적인 산업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논리가 강화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세계 번영의 기반이 된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에 기반한 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중국은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통한 경제통합의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규칙의 등장은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누구보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흐름을 잘 활용하면서 성장한 우리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다시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고 이왕이면 그런 흐름을 우리가 만들어가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기회다'란 식상한 표현을 되새겨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