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김태용 감독이 2006년 연출했다. 기구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는 이야기다. 가출 5년 만에 찾아온 동생을 만난 누이, 스무 살 많은 연상 아내를 데려온 동생, 불쑥 나타난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 사랑에 목마른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은 이복동생을 키워야 하는 누나,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연인….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된다.
가족은 혈연관계를 근간으로 한다는 오랜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우리가 혼인이라고 부르는 비혈연 관계의 결합이다. 인류문화는 근친상간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비혈연관계가 가족이 되고 이를 통해 다시 혈연관계를 만들도록 한다. 고정관념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가족은 비혈연관계에서 시작해 혈연관계로 확장되는 이중성을 갖는다.
배우 정우성은 모델 문가비가 나은 아이가 친자라고 고백했다. 청룡영화상에 참석해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고백은 널리 화제가 됐다. 영국 방송 BBC는 "국가적인 논란"이라면서 "한국은 혼외출산을 금기로 여기는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반발이 거세다"며 "가족구조가 다양하게 변화한 만큼 정우성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언론은 정우성의 아이를 '혼외자'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은 '혼외자'를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낳은 자식'으로 풀이한다. 문제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낳은 아이'엔 몇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첫째, 남녀 모두 또는 어느 한쪽이 원래 혼인을 유지하면서 생겨난 아이다. 외도 또는 불륜의 자녀다. 둘째, 남녀 모두 혼인하지 않았지만 곧 혼인을 약속하고 먼저 낳은 아이다. 미혼부부의 자녀다. 셋째, 남녀 모두 혼인하지 않았지만 혼인의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아이다.
혼외자는 최소한 3개의 경우를 일컫는 두루뭉술한 용어다. 첫째는 '외도자'고, 둘째는 '미혼자'다. '미'(未)라는 한자는 '아직 …하지 않았다'는 뜻이어서 '곧 …할 것이다'라는 의미를 아우른다. 속된 말로 '속도위반'이다. 셋째는 혼인의 의도가 없으므로 '비혼자'라 부르는 편이 좋겠다. 정우성은 이 경우다. 이들을 뭉뚱그려서 모두 '혼외자'라고 부르면 판단과 대응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비혼자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가족에 관한 고정관념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혈연과 비혈연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데도 의도적으로 혈연관계에만 무게를 실은 관습이 약해진 덕이다. 혼인, 입양, 재혼 등으로 인한 비혈연 가족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더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난다. 예컨대 올해 대법원은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인정했다. '동성 동반자'가 법적 자격을 부여받았고 가족으로 공인됐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중요한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비혼자는 기존 틀로는 규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비혼자와 그 부모에 대한 지지는 단지 개인의 선택에 대한 동의를 넘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이제 전통적인 모델을 넘어 더 포괄적이고 유연한 가족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 비혼자를 특별한 예외로 여기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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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제기한 '등록동거혼'(PACS) 제도도 고려할 만하다. 1999년 프랑스에서 시행된 이 제도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미혼 성인 두 사람이 등록만 하면 가족이 되고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다. 어느 한 명이 신청하면 동거혼을 끝낼 수 있다. 재산은 각자 관리하고 동거혼이 끝나도 분할하지 않는다. 영화 '가족의 탄생'은 한참 앞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예언했다. 정우성의 사례는 비혈연 가족이라는 변화에 관해 한 걸음 진전된 논의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다양한 가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