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법 개정 이슈가 불거졌던 9개월전, 칼럼을 하나 썼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제로 삼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이사의 의무는 △성실·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성의무(duty of loyalty) 등 2가지다. 전자는 최선을 다할 의무다. 태만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후자는 배신하지 않을 의무, 이해충돌 회피 의무다. 위임해 준 이의 이익만 생각하고 '충성'하면 된다. 이사 자신의 이익을 취하거나 위임해 준 이가 아닌 다른 이의 이익을 우선하면 충성 의무 위반이다. 이해상충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규정한 상법 제382조3 조항이다. '충실=성실+충성' 의미를 담았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충실=성실'로 이해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법이 고쳐졌다. 충실 대상에 주주를 추가했다. 2항을 새로 만들며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썼다.
# 법은 설계의 예술이다. 정교해야 한다. 좋은 취지여도 작동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은 어설프다. 보기에 따라 이사의 의무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회사를 너머 주주, 총주주, 전체주주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다가 총주주, 전체주주 등의 개념도 모호하다.
충실 대상은 주주인데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아무도 모른다. '공평한 대우'는 어느 정도인지도 마찬가지다. 공평한 것은 공정하고 평등하다는 의미일텐데 '1/N'이면 공평할까.
법 개정의 출발점이 '소액주주 보호'일 수 있다. 다만 문제풀이도 거기서 시작하면 꼬인다. 법은 그 자체로 스토리를 갖기에 그 맥락을 놓치면 허점투성이가 된다.
# 반대편에선 '미국의 경우에도…'를 항상 내민다. 미국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으로 주주를 포함했다는 게 핵심이다. 조항만 보면 그렇지만 그 속의 스토리를 알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은 동일하다는 데서 출발했다가 주주를 추가한다. 회사와 주주 이익이 달라지는 케이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회사와 주주가 병렬적인 게 아니다. 회사에 충실하되 예외적으로 주주를 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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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달라지는 지점이다. 그 이유로 이해상충을 찾아낸다. 자연스레 '소액주주 보호'보다 지배주주의 '이해상충 방지'가 핵심이 된다.
해법도 달라진다. 상법 개정안엔 애매한 '공평'을 적시했지만 미국 판례는 전체 공평성(entire fairness)' 원칙을 세웠다. 이해상충이 발생할 경우 지배주주가 입증 책임을 갖는다.
이사회 의결을 믿을 수 없으니 독립 기구에서 결정하고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의 의결을 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소액주주 보호는 이해상충 방지의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다.
# 대의만 쫓다보면 디테일을 놓친다. 법이 작동되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모호한 개념의 나열은 불확실성을 키운다. 총주주, 공평한 대우 등은 모든 것을 흔든다.
그러고보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의 지적은 그 어떤 논평보다 적절하다. "경제헌법과 비슷한 상법을 바꿔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기에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언노운(unknown‧알지 못하는)이다".
지금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현실이라는 것 뿐이다. 여기에 또다른 불확실성을 추가하는 게 시대정신의 실행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상법 개정의 선의(善意)를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치의 대부분이 판사의 몫이 된 데 이어 곧 경제의 모든 게 법원 앞에 놓이게 된다.
과도한 반발이라고 치부하진 말자. 착한 법안이 어떻게 나쁜 현실을 만드는 지 이미 수없이 목격해 왔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의문이 하나 남는다. 이번 상법 개정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면서 진행됐을까.
